맛집·쇼핑 즐기고 여행 마음껏 … 난 프리미엄 싱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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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1인가구 드라마’를 표방한 tvN ‘식샤를 합시다’의 포스터. 30대 이혼녀(이수경·사진) 등 프리미엄 싱글족 남녀 4명이 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서울 양평동에 사는 신수민(22·여)씨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 산 지 2년째인 ‘싱글족’(1인 가구)이다. 신씨는 지난 22일 서울 문래동 ‘어반게스트하우스’에서 열린 수정과 파티에 참석했다. “다양한 외국문화를 좀 더 가까이, 자주 접하고 싶은 싱글족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며 박미나(27) 쏘다컴퍼니 대표가 만든 모임이다. 일종의 사회적기업인 쏘다컴퍼니는 싱글족을 위한 식사·문화 공동체다. 지역 싱글족들을 모아 봉사활동을 하거나 다양한 공연도 주최한다. 신씨와 박 대표 등 싱글족 6명과 프랑스·독일 등에서 온 외국인 배낭여행자 5명은 이날 수정과를 함께 만들어 먹고 한국의 맛집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등포 전통시장인 신풍시장 내 포장마차에서 거하게 뒤풀이도 했다.

 2030 싱글족의 생활 모습이 바뀌고 있다. 혼자 산다고 끼니를 거르거나 햄버거·라면 등으로 대충 때우는 찌질한 자취생 이미지는 옛말이다. 더 이상 골방에 틀어박혀 있지도 않는다. 좋은 음식 골라서 사 먹고 문화생활도 다양하게 추구한다.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동호회도 조직한다.

 이들처럼 ‘개성 있고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이른바 ‘프리미엄 싱글족’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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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개포동에 사는 이모(32)씨는 대표적인 프리미엄 싱글족이다. 이씨는 월급(약 400만원)의 절반가량을 취미·여가생활에 투자한다. 건담 프라모델이나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사 모으거나 태블릿PC 등 전자기기를 산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주말을 이용해 일본 등지로 해외여행도 간다. 59㎡(약 18평) 크기 원룸에는 홈시어터 시스템과 42인치 LED TV가 자리 잡고 있다. 이씨는 “세상에 투자할 데라곤 나 하나뿐인데 원 없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6년 차 싱글족인 직장인 임정진(25·여)씨도 자신을 가꾸는 일이라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한 달 월급의 절반 이상을 이용·미용 상품을 구입하거나 쇼핑하는 데 쓴다.

 지난달 8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30대 싱글족 476명을 대상으로 생활상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2인 이상의 일반가구와 별 차이가 없었다. 혼자 식사를 하는 횟수는 의외로 적었다. ‘일주일에 3~5회(26%)’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의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 1990년에 전체 가구 중 9%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26%였다. 4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라는 의미다. 통계청은 2020년 이 비중이 30%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프리미엄 싱글족은 대부분 20~30대다.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혼자 살 가능성이 높은 40대 1인 가구는 노후를 대비해 상대적으로 소비를 덜 하는 반면 20~30대 1인 가구는 소비를 마음껏 즐기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1인 가구수가 가장 많은 연령층은 30대 이하(160만 가구)였다. 이들의 한 달 소비지출은 평균 140만원으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았다. 이처럼 프리미엄 싱글족은 구매력이 있고 자유분방하며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기 의지로 결혼을 미루는 이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구매능력만으로 구분 짓는 건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도 문화·예술 등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즐기려는 층이라면 프리미엄 싱글족이다. 단적인 예가 소셜 다이닝 사이트 ‘집밥’이다. 지난해 4월 오픈한 집밥은 당초 혼자 밥 먹기 민망한 싱글족이 모이는 사이트였다. 하지만 반년 만에 공연·전시 함께 보기, 봉사활동, 글쓰기 강좌 같은 다양한 분야의 모임을 찾는 사이트로 진화했다. 집밥을 통해 개설된 모임은 지금까지 약 2000개가 넘는다. 전국 16개 도시에서 매주 80여 개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

 프리미엄 싱글족의 출현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물질주의 사회가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어드밴티지(advantage)세대, 즉 프리미엄 싱글족을 낳았다”면서 “이들은 자기 행복을 추구하고 현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들은 심리적으로 약해 상처받기를 싫어한다”며 “결혼하고 애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어서 아예 혼자 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싱글족의 증가는 저출산 및 가족관계 단절 등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고 이들의 과소비가 빈곤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 유형을 만들어 내는 신종인류”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노후보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들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부작용을 우려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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