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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 한 마리 소유권 싸고 산골이웃 맞고소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영주군 평은면 서씨·장씨 양가싸움>
수탉 한 마리를 둘러싸고 외딴 산골마을에서 벌어진 이웃사촌끼리의 소유권다툼이 마을싸움으로 번진 채 80여일째 계속되고 있다. 닭싸움의 주인공은 경북 영주군 호은면 용혈1리 서석학씨(55) 와 서씨의 두집 건너 이웃에 사는 장유덕씨(53).
닭소동을 벌이고 있는 이 마을은 48가구 가운데 40가구가 서씨이고 나머지는 김·박씨들이며 장씨는 외톨박이로 끼여 사는 서씨 일색의 산골마을.
1천원짜리 수탉 한 마리를 두고 시작됐던 다툼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은 사소한 시비였지만 성이 다른 이웃끼리의 감정대립이 경쳐 마침내는 송사로까지 번졌다.
쌍방에서는 고소와 맞고소전을 벌여 10여명씩의 증인이 등장하고 닭값의 40∼50배가 넘는 4만∼5만원씩의 비용을 날리고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 친척들까지 무고·폭행 등 혐의로 입건, 송치됐지만 닭 한마리를 둘러싼 감정 대립은 날이 갈수록 팽팽해지는 가운데 당사자들의 닭 고집은 좀체로 누그러지지 않을 기세-.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12월초 장유덕씨의 아내 박순흠씨(50)가 서석학씨집 닭 우리에서 수탉 한마리를 자기집 닭이라면서 안고 간데서 시작됐다.
박씨가 닭을 가져가자 서씨 집에서는 박씨가 남의 닭을 훔쳐갔다면서 돌려달라고 요구했던 것.
그러나 장씨측은 자기 수탉이 서씨집 암탉을 좇아 서씨집 닭 우리에 들어가 있는 것을 찾아왔을 뿐이라면서 서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낙네들끼리 『우리 닭이다』『아니다』면서 시작된 말다툼은 서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난투극으로 치달았고 마침내는 서씨 가문속에 외톨박이로 낀 장씨의 고군분투처럼 덤불싸움으로 번졌다.
두 집안은 지난해 여름에도 장씨의 고구마밭에 서씨의 동생 석찬씨(40)의 송아지가 들어가 밭을 망쳐놓았다고 싸움을 벌었으나 주민들이 나서서 화해를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6일 서석학씨의 아내 임월희씨(51)가 『장씨가 남의 닭을 훔쳐갔다』면서 영주경찰서에 장씨를 절도혐의로 고발하면서 일단 수그러졌던 두 집안간의 감정이 솟구쳐 2차전의 「공」이 울린 것.
고소를 당한 장씨는 『내 닭을 찾아왔을 뿐인데 닭 주인을 도리어 절도로 몰았다』면서 임씨를 부고로 맞고소하고 지난번 고구마밭 싸움 때 떼어두었던 진단서를 첨부, 서씨의 아우인 석찬씨 부부까지 상해혐의 등으로 고소해버렸다.
이에 질세라 서석찬씨 부부도 역시 고구마밭 사건 때 뗀 상해진단서를 첨부, 장씨 부부를 상대로 맞고소를 했다.
서씨측은 문제의 수닭은 미종인데 반해 장씨네 맑은 모두 토종이며 닭의 울음소리로도 자기의 닭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지난 가을 자기집에 타작을 도우러왔던 이 마을 서모군(19) 등 10여명이 닭을 보았다면서 이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또 서씨는 이것마저 믿지 못하겠다면 문제의 닭을 풀어놓으면 자기 집으로 몰아올 것이 분명하다면서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닭을 풀어놓자고 제의하고 있다.
문제의 수닭은 지금도 장씨가 「나일론」끈으로 왼쪽다리를 묶어 부엌에 매어놓고 키우고 있다.
싸움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하찮은 닭 한마리를 놓고 넉넉지도 못한 집안들이 송아지 한 마리 값이 넘는 비용을 써가면서 마을을 시끄럽게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지만 장씨와 서씨는 『끝장을 보자』는 태도.
한편 이 사건을 담당한 안동지청 김익상 검사는 양측의 증인들이 결정적인 증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닭의 혈통도 가려내기가 힘들어 사건처리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안동=이기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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