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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도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해방 후 30년 동안 이 말처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말도 드물었다.
숱한 사회변혁을 치를 때마다, 소동이 날대마다 폭락된 도의를 개탄하고「새로운 윤리관의 확립」이 부르짖어졌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되풀이 돼야 족할지는 도의를 닦아야 할 민주시민의 자세 나름에 달려있다.
몇해전 톱밥에 붉은 물감을 들인 엉터리 고춧가루가 버젓이 식탁에 올랐었다.
석회가루를 섞어 만든 두부에「카바이트」를 넣어 날치기 발효를 시킨 속성 막걸리드 나돌았다.
물 탄 막걸리는 오히려 애교일 만큼 숱한 유해식품이 잇달아 나돌아 시민들의 분노를 샀었다. 장삿속만을 위한 상도의의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들이었다.
한때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청소년들의 남녀 혼성「캠프」도 옛말. 대낮 만원「버스」속에서도 꼴불견이 거침없이 벌어진다.
지난해 연말「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장석배씨(45·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34의56)는 「젊은 사람들」을 타이르다 매만 맞았다. D여대1년인 박모양(20)과 신입 회사원 김모씨(25)가 60여명 승객들의 찌푸린 눈살도 아랑곳없이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너무 한다』고 보다못한 장씨가 말하자『웬 참견이냐』며 김씨의 주먹이 장씨에게 날았던 것. 소란 통에「버스」가 서고 두 연인(?)은 파출소로 연행됐으나 부끄러워하긴커녕 오히려 큰소리였다.『내 자유인데…』오도된 성 개방주의와 나만을 알고 남을 거들떠보지 않는 극도의 개인주의·이기주의가 빚어낸 하나의 희화.
도덕과 윤리개념도『역사와 함께 변하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날의 삼강오륜 등 유교적 윤리관은 그만 두더라도 어느 사회에서나 그 구성원이 꼭 지켜야할 기본적인 규범마저 무시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도의 근본이 미아가 된지는 이미 오래전. 멀리는 그만두고 지난 한해를 돌아봐도 그렇다.
밀수 보석을 사들이고 남편의 권세를 들먹이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수사관에게 호통을 친 밀수「밀수보석」부인들의 몰염치, 자기 칼을 맞고 병원에 옮겨진 동업자를 수술실까지 쫓아가 끝내 찔러죽인 비정, 『돈을 한번 신나게 써보자』는 허욕 때문에 3명의「택시」운전사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차례로 끊어온 10대 상습「택시」 살인강도 등은 모두 물질위주의 사고방식과 인명경시 풍조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면 지녀야할 한가닥 양심마저 사라져버린 요즘. 사회 속속들이 가득 찬 불신풍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퇴폐 사조, 난무하는 폭력 등 모두가 민주시민에게는 금기로 삼아야할 기본적인 도덕률의 사멸에서 비롯한다.
며칠전 신문사에 날아온 편지 한 토막.『편집국장님, 도박과 유흥으로 빚만 잔뜩 남겨 놓은채 두 남매를 버리고 달아난 아내를 잡아 처벌해 주십시오.』경북 대구시의 최모씨(36)는 비정의 아내 김모 여인(32)의 사진을 함께 보내 호소해왔다. 가장 기본적인 가정의 윤리마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윤리 부재를 실감케 한다.
30년이란 긴 세월동안 이사회가 독선과 오만, 거짓으로 얼룩져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떤 사람들은『경제적인 빈부의 격차, 남녀평등 등 급변하는 사회 여건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과도기의 부산물』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다. 또 어떤 이는『형이상학적·종교적인 윤리관이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과 함께 그 기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신할 새로운 윤리관의 뜻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지난해 2월 경북 대구 재1지구 전기고교 입시부정 사건에 책임을 지고 경북도 교육감의 자리를 스스로 물러났던 김주만씨(56) 의 농약 음독자살은 한때 사회의「마비된 양심」에 경종을 울렸다. 그것은 바로 한 교육자의 「양심」이었다.
「새로운 윤리관」의 확립도, 형식적인 도의 교육을 벗어나기 위한 교육의 재평가도 시급하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성년시민」각자가 인간 양심에 바탕한 정의와 공정, 성실과 정직, 사랑과 겸허를 배우고 몸소 실천할 마음가짐을 갖춰야할 때다. <주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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