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제42화 주미대사시절(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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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 정상회담>
이승만·「아이젠하워」양 대통령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①대한군원 및 경원문제 ②한·일 국교정상화문제 ③기타문제를 의제로 정하고 토의를 벌였다.
우연하게도 의제는 한·미 양국의 보좌관들이 작성한 안이 일치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마자 한·일 국교문제를 둘러싸고 두 대통령간에 이견이 노출됐다. 이대통령은 『한일회담자리에서 (구보다)「구보전」일본측대표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통치가 유익했다』는 등 망언을 했다면서 『그런 일본과 어떻게 국교를 정상화시킬 수 있느냐』고 정상화반대를 주장했다.
「아이젠하워」는 이대통령의 말을 듣고 나자 옆에 앉은 「덜레스」 국무장관을 보면서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덜레스」장관은 『「구보다」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한·일 회담이 깨졌습니다』고 설명했다.
「아이젠하워」는 다시 『과거 일이야 어떻든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면서 한·일국교를 권유했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내가 있는 한 일본과는 상종을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을 하자 「아이젠하워」는 화를 내며 일어나 옆방으로 들어갔다.
회담장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이 박사는 「아이젠하워」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런 고연 놈이있나, 저런…』이라면서 흥분과 분노를 참지 못했다.
얼마 후 회담은 재개됐다. 그러나 너무 이견의 폭이 큰 한·일 국교문제는 토의를 보류하고 대한원조문제를 집중적으로 협의했다.
결국 미국이 군원 4억2천만「달러」, 경원2억8천만「달러」등 도합 7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한다는 데 합의했다.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나 따로 한·미간에 중요한 조정사항이 담긴 회의의 사록이 만들어졌다.
그 내용을 보면 ①한국은 「유엔」을 통한 통일노력에 있어 미국과 협조한다 ②「유엔」군사령부가 한국의 방위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국군을 「유엔」군사령부작전 지휘권 밑에 둔다(그러나 양국의 상호적·개별적 이익을 위해 합의 후 변경할 수 있다) ③투자기업의 사유제도를 계속 장려한다는 것 등이 들어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외교문서로 그 해 11월17일 한·미 외상이 정식 서명했다.
의사록 가운데 한·미화 환율을 1백80대1로 적용해서 경제원조규정을 정한 부분이 있었는데 환율이 5백대1로 재조정됨에 따라 이듬해 8월 나와 미국정부를 대표한 「로버트슨」차관보는 회의의사록을 수정, 서명했다.
정상회담에서 이대통령은 「아이젠하워」대통령에게 『국군을 현재 20개 사단에서 40개 사단으로 대폭 증강하고 중공과의 예방전쟁을 위해 자유중국군을 63만명으로 늘려야한다』고 제안하고 휴전협정을 무효화시킬 단계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방미기간 중 그가 50년 전에 다니던 모교 「조지·워싱턴」대학과 「컬럼비아」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알링턴」국립묘지에 가서는 경복궁에서 가져간 단풍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이 박사가 「트루먼」전대통령을 방문하는 일로 나는 미국무성측과 조그만 시비를 벌인 일이 있다.
이 박사는 방미초청을 수락한 후 체미일정 중에 「트루먼」전 대통령을 방문하는 것을 넣도록 하라고 훈령을 보냈었다.
나는 국무성에 찾아가 그 얘기를 했다. 그러나 국무성측에서는 『공화당행정부대통령의 초청으로 와서 민주당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프로터콜」에도 맞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곤란하다』고 불찬의 뜻을 밝혔다. 나는 국무성이 안 좋아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다시 훈령했다. 『「트루먼」은 내 친구야. 더구나 「6·25전쟁」때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친구야. 친구를 찾아가는 것이니 정치적으로 보지 말라고 전하라』는 얘기다.
결국 국무성이 굽혀 이박사의 일정 속에 「트루먼」방문이 들어갔다.
당시 「트루먼」씨는 「미주리」주 「인디펜덴스」자택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박사는 「트루먼」씨에게 자개 박힌 오동나무지팡이를 선물했다. 지팡이를 받은 「트루먼」씨는 『어떻게 알고 이렇게 꼭 필요한 선물을 가져왔느냐』고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트루먼」씨는 그 때 맹장염수술을 받고 겨우 기동을 시작할 때라 정말 지팡이가 필요했다. 방미중 「프란체스카」여사와 의견충돌을 벌인 일도 있다.
내가 주선해서 「샌프런시스코」에서 이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하루직전에 한표욱 공사로부터 『상부의 지시니 기자회견을 취소하라』는 얘기를 전해왔다.
누구 지시냐고 캐물었더니 「프란체스카」여사의 지시라는 얘기였다.
곧 「프란체스카」여사에게 찾아가 항의를 하니 『대통령께서 너무 피곤하시지 않을까 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기자회견을 취소하면 그 자체도 낭패거니와 대한여론을 좋게 이끌기 위해선 기자회견만큼 효과적인 일이 없기 때문에 이 박사를 찾아가 다시 말씀드렸다.
이 박사는 취소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오히려 『취소는 왜 해. 기자회견을 그대로 하도록 해』하고 지시했다.
그래서 예정대로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의 전 신문들은 이박사의 공산주의규탄주장을 크게 보도했다. 어쨌든 이박사의 17일간에 걸친 미국방문은 큰 성공을 거뒀다. <계속><제자 양유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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