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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도 행사 강행 … 총학생회, 왜 그곳을 택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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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9 소방대원들이 18일 새벽 경주시 양남면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7일 밤 체육관 지붕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진 이번 사고로 부산외대 신입생과 재학생 등 10명이 목숨을 잃고 105명이 다쳤다.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총학생회는 폭설이 내리는 산간에서 행사를 강행하고, 행사 현장에는 학생들을 지도할 교수나 안전요원이 따라가지 않고. 부산외국어대 신입생과 재학생 등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는 애초부터 곳곳에 위험요소를 안고 있었다.

 리조트는 경주시 양남면 동대산 해발 500m에 있다. 가파른 왕복 도로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눈이 쌓이면 접근조차 쉽지 않다. 사고가 난 17일이 바로 그랬다. 1주일 새 60㎝가량 눈이 쌓였다. 도로의 눈을 계속 치웠지만 눈은 쌓이고 또 쌓였다. 인근 울산에서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공장 지붕이 무너져 근로자 2명이 숨지는 사고까지 났다.

 그럼에도 부산외대 총학생회는 이곳에서 단독으로 신입행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부산외대는 원래 학교와 총학생회가 공동으로 신입생 환영회를 했다. 2012년에는 경주 한화콘도, 지난해에는 더케이경주호텔에서였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총학생회는 전처럼 학교 밖에서 하기를 원했으나 학교 쪽은 “매년 음주·안전사고가 되풀이된다”며 “3월 문을 여는 부산시 남산동 새 캠퍼스에서 행사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총학생회는 뜻을 굽히지 않고 단독으로 외부 행사를 추진했다. 대학은 이와 별도로 입학식 날인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오리엔테이션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된 게 지난달 중순이었다. 총학생회 측은 “경주 켄싱턴리조트를 잡으려 했으나 이미 예약이 찬 상태였다”며 “일정이 급해 가능한 곳을 찾다 보니 마우나오션리조트에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익명을 원한 Y이벤트 기획사 대표는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할 수 있는 리조트와 수련원이 각지에 널려 있다”며 “오리엔테이션 예정일 직전이라고 해도 예약할 곳은 많다”고 말했다. 왜 마우나오션리조트를 택했는지 의문이라는 소리다.

 총학생회와 대학 측은 지난 6일 사전답사 삼아 리조트에서 총학생회 간부 수련회를 했다. 당시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부산외대 하수권(57) 학생처장은 “사고가 난 체육관은 미리 점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폭설 속에 산 중턱 행사장을 선택한 것은 참사를 불렀다. 눈 때문에 구조작업까지 지연됐다. 계속 눈이 내린 데다 리조트 입구에서 2~3㎞ 떨어진 곳부터 차량이 뒤엉켜 119 구조대원들은 구조장비를 들고 걸어가야 했다. 무너진 지붕을 들어올리기 위해 17일 오후 10시에 요청한 100t 대형 크레인은 다음날 오전 2시에야 도착했다. 역시 눈과 뒤엉킨 차량 때문이었다. 크레인이 온 뒤 숨진 2명이 추가로 발견됐다. 구조활동을 했던 김유인(45) 부산소방본부 특수구조단 팀장은 “중장비가 빨리 투입됐다면 안타까운 희생자를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장엔 학생 안전을 책임질 교직원이 거의 없었다. 대학은 하수권 학생처장과 본부 팀장 등 교수 1명과 직원 2명만 보냈다. 부산외대 정해린(75) 총장은 “학교 행사와 별개인 총학의 독자적 행사라 학과 지도교수들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에 간 3명의 교직원은 사고 당시 체육관이 아니라 객실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 처장은 “체육관에는 단과대인 아시아대학 학생들만 있었다”며 “객실에 있는 다른 단과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느라 현장을 챙기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행사를 맡은 이벤트업체 또한 안전에 대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무너진 건물에는 학생들이 들어간 입구 말고 무대 뒤쪽에 또 하나의 출입구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를 몰랐다. 이 때문에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출입구 한쪽으로만 학생들이 몰려 사상자가 늘었다. 창문으로 탈출한 황지혜(19·여)씨는 “행사 전에 비상출구 위치를 알리지도 않았고,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또 다른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소리쳐 알려준 진행요원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정유권(28) 총학생회장은 “행사 직전부터 눈이 온 사실을 알았지만 대기업인 코오롱이 운영하는 시설이라 붕괴 같은 안전사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해린 총장은 “대학을 믿고 학생을 맡겨주신 학부모들께 송구하다”며 “학교가 책임져야 할 모든 부분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황선윤·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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