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너지는 '악의 축' 국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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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에게 최후통첩을 전했고 이라크 정부는 이를 이미 거부한 만큼 제2차 걸프전은 이미 전개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결의안 채택이 불가능해지자 미국은 영국과 함께 국제사회의 동의없이 전쟁을 강행한다는 부시.블레어 라인을 선언했다.

따라서 초미의 관심은 미국이 최첨단 무기와 전례없는 힘의 투사 능력을 중심으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속전속결을 실천할 수 있는지와 전후 국제사회 전반에 걸친 여파, 국제 경제질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라크 공격을 계기로 북핵 문제의 향방과 한반도 안보 상황의 미래 등으로 요약된다.

*** 후세인 몰락 후 남는 문제들

물론 전쟁이 장기화할 수도 있고 급기야 동맹군에 대한 다양한 테러 공격과 부분적인 대량살상무기 사용도 가능하겠지만 제2의 걸프전은 미국의 승리로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맹군의 총 병력 수는 현재 34만명이며 1990~91년의 제1차 걸프전과는 달리 군사작전에 사용될 폭탄 중 80~90%가 원격조종 및 정밀유도 무기(smart weapon)로 추정된다. 미국의 전반적인 전략은 한마디로 이라크의 39만명의 군대를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다.

특히 48시간 내에 9백여 전투기.폭격기, 1천발 이상의 순항 미사일과 원격조종 폭탄, 특수전투 요원 등을 투입해 이라크의 방공망을 무력화하고 동시에 쿠웨이트에 주둔한 지상군을 중심으로 수도 바그다드를 최단 시일 내에 점령하는 기습적이고 과감한 (shocking and audacious)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해체, 후세인 정권 교체, 이라크 해방, 종전 후 안정적 정권 투입, 그리고 중동의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 등의 전쟁목적을 일차적으로 달성하는 데에는 성공할 것이다.

다만 79년부터 집권해온 후세인 정권의 몰락으로 인한 권력공백을 쿠르드 소수민족 대표들을 포함한 범 반정부 연대인 이라크 국가위원회가 차질없이 대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자명한 사실은 후세인이 없는 이라크는 걸프지역과 중동지역에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게 될 것이며 시리아와 리비아를 제외하고 역내의 현상 타파적인 세력은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79년 이후 강력한 반미전선과 반미투쟁을 근간으로 한 이란의 성전도 실질적으로 희석될 가능성이 크며 비록 미국.이란 관계가 단기적 안목에서 정상화될 수는 없어도 극단적인 적대관계는 부분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월에 천명한 이른바 '악의 축' 국가 중 이라크와 이란은 논쟁의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며 북한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북핵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한다는 맥락에서 무력사용도 불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나 오히려 종전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초강경 노선보다 실용주의적 노선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즉 이라크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은 외교적.경제적인 수단을 총동원해 북핵 문제에 접근할 것이며, 다자주의 틀 속에서 북.미 및 남북대화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부시는 그의 정치 생명을 담보로 한 큰 모험을 강행하고 있다. 개전과 함께 추가적인 테러 공격과 북한의 군사적 시위 등의 돌발적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이미 국제질서는 9.11을 계기로 변화됐고 미국을 중심으로 향후 21세기 중반까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전쟁 종식 이후의 여파와 동맹국들과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는 탄력적이고, 관대한, 그리고 보다 개방된 팍스 아메리카 질서를 구축하는 데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李正民(연세대 교수/ 국제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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