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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제자 김태선><제41화> 국립 경찰 창설 (47)|김태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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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 영사관원 추방>
49년8월10일, 서울시경 사찰과는 서울 서대문구 정동 1번지 현 이화여고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던 소련 영사관을 수사, 영사관 관리인 「니콜라이·크레오셉」 (27)과 그의 아내 「니콜라이·주리안」 (24)을 간첩 협의로 검거했다.
이들 부부는 47년5월20일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렸을 때 소련 측 대표 「스티코프」중장의 수행원으로 우리 나라에 와 영사관 관리인이란 명목으로 계속 우리 나라에 남아 있었다.
소련과 우리 정부와는 정식 국교가 열리지 않은 관계로 그들이 우리 나라에 거주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데다 그들의 동향에 수상쩍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니콜라이·크레오셉」은 약 2년 남짓 우리 나라에 머무르는 동안에 10여 차례나 월북했다가 다시 오는가하면 영사관으로 좌익 계열의 인사를 수시로 불러들여 접촉하고 있었다.
경찰에 보고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이들 부부는 우리 나라의 국내 사정 등을 정기적으로 북한에 알려주고 국내에서 암약하는 간첩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이같은 혐의를 잡고 소련 영사관을 덮치자 47년12월1일자로 실시된 북괴의 화폐 개혁으로 북괴 중앙 은행권과 교환, 회수된 구 조선은행권 9만3천2백원과 미화 1천 「달러」및 일본도 2개. 장총 2정 등을 숨겨 가지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경찰에서는 간첩 혐의로 이들 부부를 일단 구속한 뒤 그해 8월28일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에서는 이들에 대한 간첩죄는 명백히 인정되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관대한 처분을 한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석방해 주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정책의 표현으로 「니콜라이」 부처에 대해 정책적으로 관대한 처분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 나라에 머무를 경우, 또 간첩 활동 및 이적 행위를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국외 추방을 결정했다.
이들 부부에 대한 추방 명령은 서울특별시장 명의로 내려졌으며 추방 업무는 시경에서 맡게 됐다.
이때 정부에서는 「니콜라이」 부부와 함께 소련 영사관에 머무르면서 불어강사 노릇을 하고 있던 「안다·야콘레프」 (59)라는 소련 여인도 함께 추방키로 했다.
시경에서는 그해 10월4일 개성을 경유, 이들을 38선 이북으로 넘겨보내기로 했다.
이들은 10월4일 상오 10시30분 시경에서 준비한 「트럭」을 타고 서울시경 앞을 떠났다. 출발에 앞서 나는 이들을 시경 국장실로 불러 『당신네들이 생활 보장책도 없이 이렇게 있다는 것은 곤란하니 소련으로 가는 것이 정당할 것 같다.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지 말고 돌아가 주기 바란다』고 인사말을 하고 백구 담배 10여 갑을 선물로 주고 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니콜라이·크레오셉」은 그때 수박색 「스프링·코트」를 단정히 입고 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대형 「트렁크」 2개 등 일곱 뭉치의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시경에서는 외사계 주임 김병필 경위와 형사 3명이 이들을 수행했으며 10여명의 내외 기자들이 취재를 하기 위해 동승했었다.
「트럭」에 동승했던 기자들은 수없이 질문을 던졌으나 이들은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서울을 출발한 이들 일행은 약 3시간만인 이날 하오 1시30분쯤 개성 경찰서에 도착했다.
개성 경찰서는 이들을 어느 지점으로 월북시키는지에 대해 협의를 한끝에 토성을 경유, 여현쪽 38선을 넘기로 결정했다.
개성 경찰서 사찰 계장 김억순 경감은 이들에게 38선에 대한 예비 지식을 알려준 뒤 무장경찰대로 호위시켜 이날 하오 3시40분쯤 38선으로 출발케 했다.
출발에 앞서 김 계장은 이들 세 사람에게 흰 수건으로 눈을 가리게 했다.
38선 일대의 경비 및 군사 시설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개성을 떠난 이들 일행은 험한 산길을 돌고 돌아 약1 시간만에 여현에 도착했다. 여현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시로 북괴가 도발을 일삼던 38선의 요충지였다. 목적지에 이르러 눈을 가린 수건을 풀어주자 「니콜라이·크레오셉」은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여기가 어디냐』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니콜라이·크레오셉」은 일본에 유학한 일이 있어 일본어를 잘 했기 때문에 수행 경찰관들과는 일본어로 말을 주고 받았다.
38선 경계에 다다랐을 때 기자들이 「니콜라이」를 보고 『앞으로 어디서 살겠느냐』고 묻자, 그는 『평양을 거쳐 모스크바」로 가겠다. 그러나 「모스크바」에는 주택난이 심해 집 한 칸도 얻기 어렵다』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여현과 토성을 잇는 기차「레일」을 밟고 38선을 넘는 동안 호위 경찰관은 이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잡초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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