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부재의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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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10년 동안의 가을 대학가는 거의 매년 휴강·휴교·개강·임시방학 등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가운데 『2학기 부재』의 현상을 빚어왔다. 이같은 학원 공백상태는 상아탑의 학문연마에 『통신강의』「홈·스터디」 「일부개강」이라는 변칙 수단을 등장시켰고 이제 『4년제 대학을 마친 학사가 아니라 초급대학 졸업생』일 뿐이라는 「시니컬」한 유행어까지 낳은 채 2백10일 수업일수를 채우기에 고심하고 있다.
올해도 거듭된 「데모」사태로 휴교·개강·임시방학 등 1개월여간의 학사기능 마비와 정적에 싸였던 대학가가 이제야 「일부개강」을 시작했고 12월초의 전면개강을 서두르고 있다. 학생들은 물론 사회도 그처럼 고대하는 개강이지만 학원문제는 아직도 학교당국과 문교당국의 견해조차가 엇갈린 채 그 전망이 밝지 못하다.
특히 문교당국의 수업일수 고수방침은 굳어 수업일수를 못 채우면 전원 유급도 가능하다는 강경책으로 대학은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방학 없는 겨울」을 보내야 할 판인데 겨울 연료비를 계상해 놓은 학교는 현재 하나도 없다. 또 학생들이 현 시국문제에 완전 동의하면서 그 같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혹한 속의 강의를 받을 것이냐는 것도 문제다.
이미 일부 학생들과 학교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2백10일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1백80일 수업일수를 규정한 「교육법 시행령」 62조가 사문화한지 오래라면서 문교당국의 「강경」을 비판하고 있다. 서울보다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지방대학인 전남대의 경우에도 『한·일 굴욕외교반대 「데모」가 극심했던 65년과 10월 유신반대로 휴업사태를 빚었던 72년의 경우 각각 1백76일과 1백72일의 수업을 하여 1백80일에 미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전학생이 진급한 예가 있다』는 것이다.(11월14일자 전남대학보)
『그동안 몇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최소 수업일수인 1백80일을 채우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수업은 이에 훨씬 미달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말하는 김영식 교수(서울대 교육대학원·교육학)는 올해도 대다수 대학들이 『그저 최소 수업일수를 채우는 것으로 끝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악순환의 휴강일지(도표참조)를 보고 안타까와하는 사람과 학원사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이의 근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사태의 원인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르고, 수습방안이 주로 물리적이라 휴업의 악순환은 치유가 어렵다는 게 대학인들의 얘기다.
『이제 만성적이 된 학원사태는 대학자체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고 진단한 황정규 교수(고대·교육학)는 학생들의「데모」나 소요가 주로 학원 외적인 요인에서 발생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유방법도 학원 외의 정책적 배려』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영식 교수도 학원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사회 지도층인사들의 수범 적인 자세확립이 앞서야 한다』고 말하면서 『학원내 학생활동의 자율화와 사제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강조했다.
『책가방을 낀 채 말없이 잠긴 교문을 바라보다 돌아서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슬픈 대학의 비극을 느꼈다』는 경북의대 학생과장 이시형 교수는 『구속된 동료학생의 석방을 외치는 학생들의 몸부림을 보는 대학과 정부당국의 눈이 전혀 다른 한 학원사태의 해결은 난망』이라고 말했다.
아뭏든 안개만이 자옥한 것 같은 현재의 대학가이지만 학교와 정부당국이 의견을 좁히고 효과적인 학사행정과 월동대책을 세워 74학년도를 불행한 사태 없이 넘기기를 바라는 게 모든 사람들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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