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백악관 기자단…취재낙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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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대통령의 해외여행 때는 백악관이라는 큰 덩어리 자체가 대통령을 따라 이동하는 셈인데 그 중에서도 수행 기자단의 존재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수행 기자들의 현장보고가 대통령의 국내 인기에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두 대의 전세기로 대통령을 수행하는 기자단의 취재, 송고의 편의를 위하여 백악관은 기동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한다.
「워싱턴」서 나누어주는 두툼한 안내서에는 방문지와 기착지의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텔렉스」와 국제전화 회선의 숫자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기사 쓰는데 필요한 방문지의 기본자료가 실려 있다.
그러나 신경을 쓰는 것은 백악관만이 아니라 대통령을 초청한 나라의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외무부는 처음부터 실수가 아니면 고질적인 사대주의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소련과 일본은 수행기자단 1백98명에게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비자」를 발급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비자」받는 수속을 백악관이 대행한 것뿐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포드」가 방문하는 세나라 중에서 한국만은 모든 기자들에게 「비자」를 면제하여 준다고 발표하고 소련·일본의 「비자」신청서만 내어 주었다.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은 한국 기자로부터 「비자」면제의 경위를 문의 받고서야 마지막 순간에 가서 일괄 약식으로 「비자」를 발급하는 형식을 취했다.
「비자」를 면제하여 버리면 한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기자의 입국을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을 외무부 당국은 몰랐거나 알고도 예의 사대주의 때문에 체념을 한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백악관 공보실에서 한국 방문에는 「비자」가 필요 없다고 발표하는 그 순간 한국 대사관의 서류함 속에는 「비자」발급을 간단히 하라는 본부훈령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대사관은 무모하게 「오오사까」∼서울간의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할 한국 「풀」기자의 선정에 관여하여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백악관 기자단의 몇몇 기자의 분노를 산 결과 「키신저」의 기상 중대 발언이 나오는 현장에 한국기자 『부재』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었다. 백악관 공보비서실의 「에드·사비지」씨도 한국 대사관의 말만 듣고 인선한 실수에 대해 즉각 사과를 했다』
수행기자 중에는 거물급인 NBC의 「존·챈슬러」를 비롯하여 UPI의 「헬렌·토머스」, 「타임」지의 「휴·사이디」, ABC의 「해리·리스너」같은 사람들로 들어 있었다.
이들 수행기자에 대한 접대에서 한국과 일본은 너무 대조적이어서 흥미를 끌었다.
일본 정부는 나흘 동안이나 묵는데 수행기자단에게 점심이나 「샌드위치」하나 대접을 하지 않은데 반하여 한국 정부는 조선「호텔」안에서 기자단을 위해 「리셉션」을 베풀고 무료식권을 돌리고 저녁에는 O장의 기생 「파티」에까지 미국 기자들을 삼삼오오 초대하여 환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의 「캐럴·길패트릭」기자가 조선「호텔」「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주문하자 「웨이터」는 식권을 먼저 달라고 요구했다. 이 기자는 그것이 무료식사라는 것, 식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생각난 듯이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끄집어 내보니 공교롭게도 식권은 들어 있지 않았다. 현금을 내겠다는데도 「웨이터」는 막무가내다. 결국 동석했던 다른 기자가 식권을 「희사」하여 문제는 해결되었다. O장 「파티」만해도 대부분 기사 쓰느라고 사양했지만 거기 갔던 기자들이 거기서 다른 동료들을 만나는 바람에 그 「파티」가 각본에 따른 것임을 알아 차렸다.
이번 여행 중 수행기자들간에 폭소를 터뜨린 「사건」은 23일 상오 7시 서울을 떠나던 날, 새벽4시 반까지 송고를 마치고 잠자리에든 어느 기자가 눈을 떠보니 시간은 벌써 8시. 「프레스·플레인」은 현해탄을 건너고 있을 때였다. 【김영희 주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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