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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제조·무기탈취 거론 … 이석기의 RO 치밀한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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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딱 하나. 검찰의 공소 사실 중에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건 북한 군가인 ‘적기가’ 제창 여부뿐이었다. 재판부는 이석기(52)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거의 모두 인정했다. “국가정보원이 날조한 사건”이라든가, “이 의원의 강연은 내란음모가 아니라 반전(反戰)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변호인단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일 열린 이 의원 등에 대한 1심 선고 재판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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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 김정운)는 17일 열린 이 의원 등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이 의원에 대해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홍열(48) 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 등 6명은 징역 4~7년에 자격정지 4~7년에 처하도록 했다. 내란음모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난 것은 1981년 신군부에 의해 5·18 민주화 운동 배후세력으로 지목됐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33년 만이다.

 재판부는 비밀혁명조직(RO·Revolution Organization)이 실체가 있으며, 이 의원이 총책이고,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폭동을 모의했다고 봤다. 이는 RO 내부 제보자인 이모(46)씨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됐다. “일관될 뿐 아니라, 조작된 진술이라기엔 지나치게 많은 인물과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경험들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소개했으며, 진술 태도 또한 자연스럽다”는 이유였다.

 RO의 실체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추고, 조직 보위를 위해 철저한 보안수칙에 따라 활동하는 비밀결사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RO가 가입의식과 강령, 조직원 5대 의무, 주체사상을 학습하는 세포모임 등을 갖췄다는 제보자 진술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의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R·O관(觀)으로 무장하자. RO생활을 강화하자’는 이 의원 글씨 메모가 발견된 것 또한 재판부가 RO 실체를 인정하는 데 한몫했다.

 이석기 의원이 RO의 총책이라는 검찰 의견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회합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낸 명령과 지시조의 발언, 130여 명 참석자들 앞에서 자신의 불쾌감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모습, 자신이 지정하는 방향에 즉시 따를 것을 강하게 촉구하는 태도”에 따른 판단이었다. 지난해 5월 10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청소년수련원 회합 때 김근래(47)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늦게 들어오자 이 의원이 “김근래 지휘원, 자네 뭐 하는 거야, 지금”이라고 꾸짖은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5월 12일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수사회에서 열린 모임에 대해서는 “조직원들이 일관되게 총기 및 사제폭탄 제조법, 무기고 탈취 등을 거론했고,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검토한 바에 따르면…’ 같은 발언을 수차례 한 것으로 미뤄 이날 논의 계획이 사전에 치밀하게 이뤄졌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경기도 평택 유류저장고와 서울 혜화전화국 등 국가기간시설을 정확히 거론하고 시설의 취약성을 언급한 것은 구체적 내란 실행계획과 세부논의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날 모인 130여 명 조직원들은 주체사상과 대남혁명론에 의한 사상적 일체감을 갖고 결정적 시기가 오면 총책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 폭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전시 상황 때 북한을 도와 후방을 교란한다면 대한민국 정부 전쟁 수행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을 종합해 내란음모 및 선동에 대해 유죄 판정했다.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했다. 김칠준(54) 변호사는 “(판결이) 정해진 결론에 일사불란하게 꿰어 맞춰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RO 회합에서 논의된 내용을) 내란음모 수준으로 볼 것인가가 이번 판결의 관건이었다”며 “항소심에서도 이 점에 대한 해석이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국대 한상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RO를 조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비밀회합에서 나온 논의가 내란음모로 연결됐다”며 “항소심에서는 RO 조직의 실체에 대해 한층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윤호진·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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