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盧 "국익 고려 고민 끝 미국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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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라크전이 시작되면서 정부의 대응도 발빠르게 취해지고 있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20일 오후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 직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정부의 조치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정부는 관계 기관.기업 등과 공동으로 국내외 상황을 24시간 점검하며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盧대통령은 21일 박관용(朴寬用)국회의장.여야 3당 대표와 청와대에서 만찬을 하고 초당적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고민 담긴 대통령 담화=盧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미리 준비한 문안을 토씨 하나 안 빼고 그대로 읽었다. 평소 즉석 연설을 하거나 중간 중간 원고에 없는 이야기를 하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국내의 반전(反戰)여론이 적잖은 만큼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미국 입장을 적극 지지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지지도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상황도 감안한 듯했다.

盧대통령은 이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 이라크 군사 행동'이라고 이라크전을 지칭했다.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고민 끝에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盧대통령의 고민은 대선 당시 자신의 주 지지층이었던 젊은 네티즌과 시민단체 등에서 반전 기류가 높다는 대목이다.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盧대통령도 내심으로는 이번 전쟁에 대해 썩 내키지 않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지지를 거부할 경우의 파장은 적지 않을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핵 문제가 걸려 있다. 이라크전이 종료된 후는 바로 북핵 국면으로 상황이 넘어간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번엔 다급한 미국을 도와줘야 차후 북핵 국면에서 우리가 '한국 주도의 해결' 목소리를 미국에 개진할 명분이 생긴다"고 했다. 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무디스와 S&P 등 미국 내 신용등급 평가기관의 평가등급 하향조정도 간신히 막아놓은 터다.

◆군사지원 속도 조절=청와대는 일단 미국에 대한 지원은 하되 반전 여론을 고려, 그 속도와 규모를 조절하는 '주춤주춤' 행보로 갈 것이라고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당초 정부는 5백~6백명 규모의 공병대대만을 파병할 방침이었고, 의무부대 지원은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19일 상당수의 야당 국방위원들까지 "의료부대는 물론 화생방 부대도 보내 경험을 쌓게 하라" "기왕에 지원하려면 전후 복구 건설사업 지분을 위해 적극 참여하라"는 제안을 해 의무부대 지원이 긴급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대책=재정경제부 대회의실에서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주재로 11개 부처 장관 및 관계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긴급 경제장관회의에서는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비상대책은 에너지 수급.수출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쟁을 앞두고 유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긴 했으나 돌발 사태로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를 웃돌 경우 정부는 유가 안정 대책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대책은 ▶내국세(특소세.교통세)의 단계적 인하▶에너지 사용의 제한 또는 금지 조정 명령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사용 자체를 제한하는 대책은 ▶호화 유흥업소의 네온사인, 분수대.교량의 도심 경관 조명 등 옥외조명 사용을 자정부터 다음날 일몰 때까지 금지하고▶골프장.스키장.대중목욕탕 등의 에너지 사용시간을 제한하며▶영화관의 심야상영을 자정부터 금지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이 단계에서 승용차 강제 10부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유가가 오를 뿐 아니라 공급 자체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 강도 높은 대책이 시행된다. '국지적 수급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 에너지 사용.공급을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되고 이보다 상황이 더 악화돼 '전반적인 수급 차질'이 빚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배급제.제한송전이 실시된다.

◆수출.산업대책=이라크전 발발과 함께 수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20일 이라크전이 이미 예상돼 수출 관련 업계가 크게 동요하고 있지는 않으나 수출 상담 중단 등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자부에는 이날 현재 ▶수출 상담 중단 29건(1천9백14만달러)▶수출 대금 회수 지연 6건(56만달러)▶선적 하역 중단 16건(3백90만달러) 등 총 61건(2천4백30만달러)이 보고됐다. 산자부는 비상대책반(02-2110-5286, 02-503-9461)을 통해 수출과 관련된 애로사항을 접수하고 있다.

수출 비상대책반은 전쟁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수출업계의 애로를 해결하고 전쟁이 끝난 후 이라크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산자부는 플랜트 수출협의회.KOTRA 등과 긴밀한 연락체제를 유지하며 근로자의 안전 상황과 플랜트 시공 현황을 수시로 점검하기로 했다. 30대 수출 기업과는 핫라인을 구축해 놓았다.

산자부는 전쟁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자동차.일반기계.전자업종의 침체가 상대적으로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자동차에 대한 특소세의 한시적 인하와 특소세 조기 개편(배기량별 3단계→2단계), 디지털TV와 에어컨 등 전자제품에 대한 특소세 인하 또는 폐지, 설비투자 세제 감면폭 확대, 수입원자재 관세 인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훈.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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