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호박이 … 가족 · 삶의 순리로 또 하나의 대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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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06면

역시 문영남(54) 작가였다.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이하 왕가네)’은 9일 방송에서 전국 기준 48.3%(AGB닐슨코리아 집계)로 자체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20%만 넘어도 대박이라는 요즘 드라마 시장에서 놀랄 만한 수치다. 16일 종영을 앞두고는 과연 50%를 돌파할 것인가가 새로운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시청률 50% 넘보는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작가 문영남

‘흥행 보증 수표’ ‘스타 작가’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또다시 입증한 그는 화려한 필모그래프의 소유자다. 1992년 ‘분노의 왕국’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껏 단막극을 제외하면 14개의 작품을 집필했고, 이 중 8개가 40%가 넘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애정의 조건’(2004)부터 ‘장밋빛 인생’(2005), ‘소문난 칠공주’(2006), ‘조강지처클럽’(2007), ‘수상한 삼형제’(2008)까지 매해 시청률 40%가 넘는 연타를 날린 것 역시 방송계에선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그런데 과거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문영남표 흥행 공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일단 가족 3대를 중심으로 여러 형제의 다양한 캐릭터가 드라마의 축을 이룬다. 가족 구도에서 고부 갈등과 부모의 편애로 인한 형제 갈등은 기본. 여기에 우스꽝스러운 작명으로 각 역할의 색깔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 문영남표 스타일이다. ‘왕가네’의 경우 첫째 딸 왕수박과 둘째 딸 왕호박은 마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라는 말이 연상되는데, 수박이 철없이 꾸미기만 좋아한다면, 호박은 착하고 성실한 딸로 그려진다. 이전 작품 ‘소문난 칠공주’에 나온 나미칠·나설칠·나덕칠 이름들과 맥을 같이 한다. 시집살이 한이 많은 이앙금, 늘 신중한 고민중 같은 이름은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실제 연기자들이 작가가 가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 것도 이 ‘캐릭터 살리기’다. 고민중 역을 맡은 배우 조성하는 한 인터뷰에서 “연기자의 개성을 캐릭터에 잘 넣어주는 게 문 작가의 힘”이라고 치켜세웠다. 마치 극단을 꾸린 것처럼 1주일에 한 번씩 꼭 회식을 열고, 대본 연습에 직접 나와 배우들의 미세한 행동까지 드라마에 살려내는 것도 그의 특기다. 극중 조씨가 노래 ‘먼지가 되어’를 부르는 장면이나 이윤지가 강아지 소리를 내는 장면은 배우의 실제 일상에서 찾아낸 에피소드다.

캐릭터가 극적인 스토리와 잘 엮이려면 밉상 혹은 악역이 있기 마련. 작가가 택한 건 하나같이 불륜이있다. ‘왕가네’에서는 형편이 어려워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왕수박과 알뜰하고 성실한 아내를 둔 허세달이 각각 바람을 피우며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그러다가 결국 반성과 후회로 용서를 빌면서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이렇게 권선징악과 신파가 적당히 어우러지는 스토리를 두고 ‘자기 복제’니 ‘막장 코드’니 비난의 소리가 꽤 있다. 특히 ‘왕가네’에선 납치 자작극이나 며느리 오디션 등 비현실적 상황까지 그려졌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혀 놓는 비결은 뭘까.

정덕현 칼럼니스트는 “주말 8시라는 시간대에 딱 어울리는 얘기”라면서 “결국 착한 사람이 잘 풀린다는 결말, 지지고 볶던 모든 갈등과 위기를 결국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해결해 내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뒤집어 보면 대중은 드라마에서라도 삶의 순리에 대한 확인과 가족 판타지를 느끼고 싶다는 얘기다. 그만큼 우리네 삶이 외롭고 고단하다는 반증일 터다. 그러니 그의 드라마가 뻔하다고 하면서도 다시 찾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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