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국가 기틀 마련한 팔레스타인 난민|「아랍 정상」의 PLO 대표권 승인과 중동의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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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라바트」의 제7차「아랍」정상회담에서「이스라엘」에 점령된「요르단」강 서안을 포함한「팔레스타인」실지에 대해 대「이스라엘」협상의 유일 합법 대표로 승인 받음으로써「팔레스타인」난민들은 어둡고 쓰라렸던「피난민 집단」의 신세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팔레스타인」민족 국가를 세울 초석을 마련했다.
이로써 중간 문제 해결에 불가결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중요한 명분 하나가「아랍」강·온건파간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사태 발전은 당사국간의 현상 고정을 토대로 추진해 온「키신저」외교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으며「팔레스타인」실지의 귀속권을 주장해 온「요르단」의 주장은 백지로 돌아갔고 PLO를 협상 상대로 결코 인정치 않겠다고 해 온「이스라엘」측 입장도 도전을 받게 되었다.
정상회담이 한 때는「후세인」과「알라파트」PLO의장간에 이 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서「아랍」의 단결을 목표로 한 정상회담이 다른 중요 의제는 토의도 하지 못한 채 자칫 분열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낳았었다. 「요르단」측과「팔레스타인」해방기구 측이 서로 그 대표권을 주장, 회담이 교착 상태에 이르자 20개국 수뇌들은「사다트」「부메디엔」등 7인 위원회를 구성, 「후세인」과「아라파트」의 화해를 강력히 종용하였고, 또 대세가 PLO에 기울게 되자「후세인」왕이 마침내 양보함으로써 극적 타결에 이른 것이다.
이 결과로「아랍」정상들은 28일 5개항 결의안을 만장 일치로 채택했는데 그 중요 내용은 ▲「팔레스타인」인민의 자결권 행사 확인 ▲「팔레스타인」인민의 유일 합법적 대표인 PLO의 지도하에 해방 지역에「팔레스타인」국가 창설 재확인 ▲PLO가 대·내외적인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미 PLO는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20개국「아랍」외상 회의에 고무되어 11월2일 전에「팔레스타인」망명 정부를 수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문제에 대한「아랍」측의 내분이 극적으로 수습됨으로써「키신저」미 국무장관의 중동 평화 외교는 적지 않은 시련을 받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키신저」는 그의 방문 외교를 통해 거중 조정하는 것을 기초로 하여「이스라엘」과 그 인접국간의 개별적인 협상을 통한 중동 평화의 단계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했던 것이다.
「라바트」정상 회담에 앞서「키신저」는 그의 7차 중동 순방 외교를 통해「아랍」지도자들에게 자신의 단계적 막후 협상에 의한 중동 평화 실현에 장애가 될 강경한 입장을 채택하지 말 것과「이스라엘」과 그 인접국간의 개별적인 협상을 승인해 줄 것, 그리고「팔레스타인」문제와 소련을 끌어들이게 될「제네바」평화 회담의 재개 등은 당분간 거론하지 말 것을 제의했었다.
따라서 이번「아랍」정상 회담의 5개 결의안은「키신저」의 요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된다. 즉「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요르단」강 서안의 정식 협상 대표로 승인함으로써「이스라엘」과「요르단」간의 개별적인 협상을 통한 해결을 근본적으로 봉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동전 이후 한동안「아랍」에서 그 발판을 상당히 잃었던 소련이 세력 만회를 위해「아랍」의 강경 노선을 부추기면서 아울러「이집트」와「시리아」에 전전 수준이상의 무기 공급을 한 것도「키신저」외교의 암영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거기에 친소적인 PLO가 이번에 큰 외교적 승리를 거둔 것은 중동내 소련 세력의 회복을 보여 주는 증거인 것이다.
실제로「브레즈네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 14일「모스크바」를 방문한「이스마일·파미」「이집트」외상과의 회담에서 중단된「제네바」평화 회담의 조속 재개를 공동으로 요구한바 있다. 그런데 이들「아랍」제국이「팔레스타인」민족 문제를 PLO에 귀속시키는데 완전 합의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중동 평화회담 모색에 있어「아랍」권 내의 분열 요인이 제외되어 공동 일괄 타결의 강력한 입장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
「키신저」는 지난 7차 중동 순방시「사다트」등「아랍」지도자들로부터 지난 해 12월에 중단된「제네바」평화회담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 받았다. 따라서「키신저」가「이스라엘」의 대 PLO 협상 거부를 어떤 선에서 무마시켜 협상으로 끌어내느냐가 중동 평화회복의 관건이 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키신저」는 또 다른 전쟁, 즉「팔레스타인·게릴라」활동의 전면 중지 확약을 받아 내야 하는 어렵고 긴 외교 노력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중동 문제의 제1 당사자라고 할「팔레스타인」이 협상 당사자로 인정을 받게 됨으로써 중동 문제 해결 노력은 드디어 본 궤도에 오른 것이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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