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 넘보는 일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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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영화가 한국시장을 엿보기 시작한 것은 한·일간에 국교가 정상화되기도 전인 60년대 초기부터였다.
62년5월 서울에서 열린 제9회「아시아」영화제에『춘삼십랑』등 몇 편의 영화를 출품한 일본은 한국시장에 대해 군침을 흘리게 되었고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모든 분야에서 상호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유독 영화만 막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이유를 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영화계에 대해 추파를 던져 왔다.
세계 유수의 영화 산업국 가운데 하나로서 일본이 한국 영화시장을 석권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70년대 들어 영화산업이 사양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외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며 특히 일본영화가 일반 공개되는 경우 친일감정과는 별개문제로 영화「팬」들의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할 것은 틀림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영화교류를 시작한다고 할 때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한국 전체 국민의 일본에 대한 적대감정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을 떠나 예술적인 차원에서만 거론한다 해도 한·일간의 영화교류는 바로 일본영화의 일방 통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령 외화의 수입 가격인 최저 3만「달러」와 국산영화의 수출가격인 최고 5천「달러」가 한·일간의 영화 교류에도 적용된다면 한·일간의 무역 역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 틀림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조건으로라도 한국 영화가 일본시장에서 어떻게 버텨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69년11월 한·일 영화교류의 전소로서 서울에서 일상회의 성격을 띤 일본 영화 주간을 개최하기로 양국간에 합의가 됐다가 실현을 보지 못하게 된 것도 대일 감정과 함께 이러한 양쪽 영화계의 입장이 작용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시장을 개척하려는 일본의 노력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71년 아무 이득도 없는「아시아」영화제를「보이코트」한다고 선언했다가 72년 서울에서 열린 제18회「아시아」영화제에 12편의 영화와 함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한 것은 그 집념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71년 영화 당국은 언젠가는 한일 양국에 영화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그에 앞선 조치로서 ①일본과 제3국의 합작 영화수입 ②국산 영화에 일본 배우 출연 ③한·일 합작 영화제작 ④일본 영화 수입 등 4단계 조치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조치가 마련되기까지는 상당한 연구·검토가 있었겠지만 이 조치를 살펴보면 3단계까지는 종국적으로 일본 영화를 수입하기 위한 들러리 격인 느낌을 씻어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조치 역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이 이번 영화공채「채늘」을 통해 일본영화수입을 허가하도록 요청한데 대해 영화계 인사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보이고 있다.
▲유현목(감독)=우리가 영화를 통해 그 나라의 생활감정·사고방식을 알아 왔던 것처럼 일본 영화를 통해 일본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일본 영화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문여송(감독)=일본 영화가 우리 영화에 끼칠 독소는 가공할 만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질적으로 1대1로 겨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야 한다.
▲신상옥(감독)=일본 영화도 구미 영화처럼 외국영화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지만 심사숙고한 끝에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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