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품 쓰면 과태료 … 울고 싶은 장례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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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2일 오후 8시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H 장례식장. 접객실 세 곳엔 100여 명의 조문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막 문상을 마친 3명이 한쪽 테이블에 둘러앉자 밥·국·반찬 등이 새로 차려졌다. 밥그릇·국그릇·종이컵 각 3개, 반찬 접시 5개,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숟가락이 놓였다. 하나같이 일회용품이었다.

 장례식장 사무장 박모(48)씨는 “하루 300명 정도의 조문객이 찾는데 저녁시간에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일회용품을 안 쓸 수 없다”며 “하루에 쓰레기가 아무리 차곡차곡 쌓아도 100L 봉투로 3~4개씩은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14일부터는 음식점처럼 직접 음식을 조리해 조문객들에게 내놓는 이곳 장례식장에선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혼례·회갑연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할 때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8월 개정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이날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 법은 조리·세척시설을 갖춘 장례식장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을 조문객들에게 제공하는 경우에도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환경부 신진수 자원순환정책과장은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병원 장례식장 대부분은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을 단순히 데워 제공하는 수준이라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전국 장례식장 1040곳 가운데 중소 규모 140곳 정도가 해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제공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규제 대상이 사업장이기 때문에 이들 140개 장례식장에서도 상주나 상조회사 측에서 음식을 들여와 제공할 때는 일회용품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가 비현실적이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장례업협회 김태관(60) 충북지회장은 “일회용품을 못 쓰게 되면 계속해 식기를 세척해 써야 하는데 조문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오후 6~9시 시간대에는 감당이 안 될 것”이라며 “그릇을 대량으로 준비해야 하는 데다 세척시설을 확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파주시 H장례식장 박 사무장도 “식기세척기에 소독시설까지 갖추느니 차라리 세척 시설을 없애 버리면 규제를 받지 않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가 전국 15개 지역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장례식장 일회용품 사용 규제 필요성을 조사했을 때도 응답자의 54%는 찬성, 40%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환경부 신 과장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어 일단 조리·세척시설을 모두 갖춘 곳으로만 제한했다”며 “나머지 장례식장에 대해서는 자율적·단계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장례식장 일회용품 줄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폐기물 처리비용 등 연간 244억원을 아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환경부는 혼례·회갑연의 경우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더라도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혼례·회갑연 등은 음식점이나 호텔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음식점 등에서는 이미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 식기와 수저 사용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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