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튼 질문에 응전식 답변|12일로 끝맺은 5일 동안의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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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의원 20명이 나선 안보·외교·경제·사회 분야의 대정부 질문이 12일로 끝났다.
첫날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김종필 총리가 질문·답변을 주고받은 데 이어 5일간 계속된 「행정부 비판」에서 의원들은 △체제 △부패 △인권 등 내연되고 있는 정치 문제들을 「겉 핥기 식」이나마 두드리고 넘어갔다.
「정치의 원내 집약」이란 여당권의 의정 방향이 의원들의 말문을 터놓게 했으나 여기에 비례해서 행정부의 답변도 저자세를 벗어난 응전「스타일」로 변형됐다.

<「마이크」잡고 예행 연습도>
최용수(유정) 의원을 제외한 동원이 초선으로 짜여진 공화·유정 발언 「팀」은 대부분이 본회의 처녀 질문 이어서 사전 준비가 철저했다.
발언자들은 녹음기를 준비해 방안 질문도 연습했고 박찬 의원(공화)은 본 회의장에 들어가 「마이크」를 잡고 예행 연습. 여야 총무단은 준비 만전에 신경을 썼다.
특히 공화당의 경우는 발언 한계와 분야를 할당, 조정해 주고 시간은 30분을 엄수토록 지시. 처음엔 발언 요지만 검열하였으나 요지에 없던 아픈 얘기들이 튀어나오자 원고 전문을 검열했다.
신민당도 의원들의 발언이 끝나면 중간 평가회를 열어 발언 내용을 「체크」.
사후 대책과 다른 의원의 발언 방향을 논의했다. 안보·외교 분야 질문이 끝난 11일에는 원내 대책 회의를 소집, 신민당 의원들의 발언에 대한 강경 반응을 공격.
질문 사전 검열이 심하자 어느 공화당 의원은 발언 원고 뭉치를 들고 새벽 6시에 총무집을 찾아가 아예 『발언 내용을 얘기해 달라』면서 지시를 받았다는 것.
이런 여야 총무단의 발언 관여로 대부분의 발언자들은 유인된 원고를 낭독했다. 김경인 의원(통일) 같은 이는 원고를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다 시간이 모자라자 큰 대목만 묻고 넘어갔고 박일·한병채 의원 등은 끝내지 못한 부분을 속기록에 담아 달라고 요구.
박찬 의원은 원고 내용을 일부 빼놓고 다른 내용을 바꾸어 넣었다가 총무단으로부터 『의제에 없는 발언을 했다』고 질책을 받았다.
여야 의원들이 총무단 지시대로 비교적 발언 시간을 지킨 데 비해 야당 의원들은 1시간씩의 최대 허용 시간을 채우고도 모자라 대부분 「마이크」가 꺼진 다음에야 하단.

<야당, 정치 비판으로 시종>
대정부 질문에서 공방전이 치열했던 대목들을 옮겨 보면-.
△체제=민주 체제로의 환원과 관련된 개헌 논쟁이 초점. 「결자 해지」란 말로 박 대통령 스스로 결단을 내려 주기를 촉구한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45분 질문의 대부분을 정치 비판으로 시종. 『능률의 극대화라는 미명하에 3권을 한 손에 쥐고 행정부 마음대로 모든 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지만 어느 한구석에도 능률의 흔적은 찾아볼 수 가 없다』 『현 정권은 국가의 안보라는 명분 위에 정권 안보를 같이 올려놓고 있는데 정권의 안보가 우선하는지 국가 안보가 우선하는지 분별하기 어렵다』는 체제 비판과 개헌 얘기가 김 총재 발언의 중심.
한병채 의원(신민)은 『최근에 항간에는 개헌 문제가 설왕설래하는 말들이 오르내리고 있다』면서 정부측의 입장 설명을 요구. 김종필 총리는 『항간에 개헌설이 유포되고 있다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낭설을 가지고 일일이 말할 성질도 아니다』고 했고 『유신 헌법은 91%의 절대적인 국민의 찬동을 받아 확정됐고 이 헌법을 개정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개헌 반대 입장을 표명.

<보석 사기를 콩나물 사듯>
▲부패=「골프」장·요정 폐지론으로부터 보석 환수 운동 전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왔던 인기 질문 품목 정운갑 의원(신민)은 밀수 보석 사건과 관련, 『부인들이 보석 사기를 콩나물 사듯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돈을 남편이 갖다 주기 때문이야』라면서 그 돈의 출처를 추궁하고 『74억원 부패(박영복 사건)가 있는데 4백40만원짜리 보석 반지쯤야 다반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주장.
이기택 의원(신민)은 『l인당 송금 한도 3백「달러」인데 월세1천「달러」「아파트」에 고급「캐딜랙」을 굴려 최소한 3천「달러」생활비를 쓰는 외국 유학 중의 특권층과 재벌 자녀의 호화판 생활』에 대한 진상 공개를 요구.
황산덕 법무장관은 『글쎄 그 많은 돈이 안 나와야 했다』면서 『아마 남편의 공무원 봉급으로는 살수가 없으니까 부인들이 계를 해서 번 돈인지 잘 모르겠다』고 궁색한 답변.
김 총리는『취임 후 지난 3년간 공무원의 기강 확립을 위해 노력을 했고 성과도 올랐다』고 했다.

<김씨 처우의 법적 근거 묻고>
▲인권=야당 의원이 빠뜨리지 않고 질문했던 필수 과목. 『미국의 대한 군원 가운데 1억 「달러」가 삭감된 것은 우리 나라의 인권에 관련된 일련의 사태 때문이 아닌가?』 『영국의 보수적인 주간지 「이코너미스트」까지 남한이 북한과 닮아 간다는 논평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등은 한병채 의원의 질문.
김경인 의원은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소위 김대중씨 사건의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인가…. 오히려 김씨만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강요당하고 있다. 엊그제 추석에도 찾아오는 사람을 문 지키는 기관원이 제지하고 있었는데 무슨 법적 근거에서인가』라고 따졌다.
김 총리는『외국 기자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써 대서 외국의 소위 인도주의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있으나 고문이 있거나 인권을 유린, 가해한 사실이 없다』 『그전에 기관에서 심하게 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시정을 약속한바 있고 책임자가 바뀐 뒤에는 없다』 『진범은 아직 못 잡고 있으나 김대중씨는 완전히 자유스런 몸』이라고 답변.

<「설득조」 벗어난 김 총리>
질문이 정책 비판의 강도를 높인데 비해 특히 김 총리의 답변은 종래의 「설득조」에서 「위협조」가 가미되어 강경했던 편.
『국민을 어지럽히는 것은 정치인이나 지성인이 취할 바가 아니며 오히려 죄를 짓는 것』 『허튼 기준에서 우리 처지를 운위하는 것은 사이비 언론』 『서구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사회를 어지럽힐 때 어찌 손을 안댈 수 있겠는가』 등이 그 예. 남덕우 부총리는 재무장관 시절과 다름없이 차분한 「강의식」답변.
학자 출신인 황 법무·유 문교·신 통일원 장관 등은 대체로 무난했으나 황 법무는 특히 농담 섞인 답변으로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여야 의원들의 비판 발언은 체제나 통치 기능과는 무관한 공무원 부정·재벌 사치 등 「한계 있는 비판」으로 일관.
자기들이 질문한 대목에 대한 답변이 없어도 아무 이의를 걸지 않았다.
의원들의 새로운 제안은 △헌법개정 심의 위원회 구성(김영삼) △교민처의 신설(김효영) △예산청의 신설(김성주) △3부 합동 축재 조사단 구성(이기택) △노동청의 부 승격(임인채) △공무원 재산 등록제(박찬) △국정 감사권의 부활(김경인) △부녀부의 신설(서영희) 등 양산이 된 셈. <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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