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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235>이어도의 모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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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최충일 기자

지난 연말 신문이나 TV에 이어도라는 지명이 자주 나왔지요. 언뜻 섬 이름 같지만 사실은 바닷속 암초입니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다 1900년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지정학적인 가치가 커 2003년 6월 해양과학종합기지가 세워진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한·중 방공식별구역(ADIZ) 논란으로 핫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지요. 태평양으로 향하는 길목이자 자원의 보고(寶庫)인 이어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태풍 때만 보이는 환상의 섬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남쪽으로 149㎞ 떨어져 있는 수중 암초다. 중국 최동단 퉁다오(童島)와 247㎞, 일본 도리시마(鳥島)와는 276㎞ 떨어져 있다. 인접한 세 나라 중 거리상으로 우리나라 국토에서 가장 가깝다.

 암초는 굴곡이 심하고 복잡한 해저지형 안에 4개의 봉우리로 솟아 있다. 최고봉은 해수면 아래 약 4.6m에 있으며, 남북과 동서로 각각 1800m, 1400m에 걸쳐 뻗어 있다.

 이어도는 해수면보다 낮아 유엔해양법상 섬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평소에는 바닷물에 잠겨 큰 파도가 치지 않으면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태풍이 올라오는 길목에 있어 그나마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유엔은 인공 또는 해양구조물을 설치하더라도 영토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타적경제수역(EEZ) 또는 대륙붕 경계획정 등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우연한 사고로 1900년 6월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당시 영국 화물선 소코트라호가 일본에서 상하이(上海)로 가던 중 암초에 부딪힌 게 이어도다. 이곳을 영미권에서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지명위원회에는 소코트라 암초 외에 ‘이어도(Ieodo)’ ‘파랑도(Parang-do)’로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에 그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51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해군 탐사가 시작됐고 정부와 민간 기관이 여러 차례 탐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당시 탐사팀이 이어도를 발견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나와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대가 1984년 이곳을 탐사한 뒤 ‘파랑도’라 이름 붙인 게 공식적인 첫 발견이다.

# 지하자원 풍부한 황금어장

제주도 남쪽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지점의 최남단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지난해 6월 한국해양조사원 소속 선박이 유지 보수 직원들을 하선시키기 위해 기지로 접근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민국이 설정한 제4광구 중 한 곳이다. 다량의 석유와 천연가스·망간·니켈·코발트 등 230여 종의 자원이 매장돼 있다.

 계절에 관계없이 연중 다양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황금어장으로도 유명하다. 해마다 8~9월이면 제주 어선들이 이곳에 한 달 넘게 머물며 갈치를 잡는 것도 풍부한 어획량 때문이다. 옥돔과 도미·장어·병어 등도 많이 잡힌다. 볼락과 돌돔 등 고급 어종들이 산란을 하며 민어와 조기는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주변 해역은 구로시오 해류와 서해의 한류, 중국 대륙의 연안수가 서로 교차해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물고기 먹이가 많은 만큼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 어선들의 조업도 활발히 이뤄진다. 서해 바다가 중국 어선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어족 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25만여 척의 배가 인근 해역을 통과한다. 우리나라 유조선의 경우 대부분 이곳을 통해 세계 각국을 오가고 있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서의 가치도 크다.

 태풍이 오는 길목에 위치해 지정학적 가치도 크다.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의 진로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중심으로 기상청 관측선도 수시로 이곳을 찾는다.

이어도는 중국과의 EEZ 경계가 확정되지 않아 관할권 다툼이 자주 벌어지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제네바 대륙붕 협약(1958년)을 토대로 한국과 중국의 수역 중간에 경계를 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협약에는 특별한 사유에 의해 경계선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 국가 간 중간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이 경우 이어도는 자연스레 우리나라 수역 안으로 들어온다.

 중국은 2000년 초 우리나라의 해양과학기지 설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인 이후 지속적으로 반감을 표해왔다. 2011년 주변 해역에 관공선을 16차례 보내는가 하면 지난해부터는 장거리 정찰기로 이어도가 포함된 동중국해를 순찰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다롄(大連)기지의 해군 잠수함도 이 부근을 지나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공식별구역(ADIZ)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23일 동중국해 상공에 이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이에 한국은 지난해 12월 8일 이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을 재설정함으로써 맞불을 놨다.

# 관할권 상징, 해양과학종합기지

1984년 5월 12일 제주대 해양대학 조사팀과 중앙일보 취재팀이 전설 속의 파랑도(이어도)를 발견하는 모습.

이어도 부근에 인공 시설물이 처음 설치된 건 1987년이다. 당시 해운항만청이 선박의 안전 항해를 위해 등부표를 설치한 게 시초다. 1996년에는 종합해양기상 관측부이를 설치했지만 파도에 의해 자주 훼손되자 과학기지 건설이 검토됐다.

 이듬해 과학기지를 세우기 위한 지반 검사를 벌였으나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암반층으로만 지반이 구성돼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내부가 펄과 모래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암반 외부만 1.5m의 응회암층이고 안쪽은 쉽게 부서지는 구조였다.

 기지의 구조물 설계를 맡은 현대중공업은 이런 지반에서도 버틸 수 있는 철제 기둥 구조물을 고안해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설치 예정이던 쇠말뚝이 4개에서 8개로 늘어났으나 태풍에 견뎌낼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실제 크기의 80분의 1로 축소된 기지 모형에 대한 태풍 시뮬레이션 실험을 하고서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 구조물은 1959년 태풍 사라 규모의 큰 태풍에도 견뎌낼 수 있게 만들어졌다. 파도 높이 24.6m, 순간최대풍속 46.9m/s를 기록한 사라는 당시까지 우리나라에 상륙한 태풍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1995년 착공 후 여러 시행착오 끝에 2002년 10월 기초인 하부구조 설치가 완료됐다. 2003년 6월 11일에는 상부구조물 설치를 거쳐 마침내 해양과학기지가 완성됐다. 이어도 최고봉에서 남쪽으로 700m 떨어진 동경 125도, 북위 32도 지점이다. 이 구조물은 현재까지도 이어도 관할권의 상징 역할을 하고 있다.

# 태풍 예방 등 기상학적 가치 커

해양과학기지는 총 212억원을 들여 순수 우리 기술력으로 만들었다. 1300㎡ 규모의 기지에는 헬기장과 최신 해양·기상 관측장비 108점(44종)이 가동되고 있다. 여기서 관측된 풍향과 풍속·기압·파고 등 자료는 무궁화위성을 통해 국립해양조사원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태풍의 경우 이곳에서 관측된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태풍의 접근 시각이나 진로·세기 등을 제주도에 상륙하기 4~6시간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 전체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데도 사용된다. 해당 자료는 이어도해양과학기지 홈페이지(http://ieodo.khoa.go.kr)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기지의 중요성이 높은 만큼 매년 8차례에 걸쳐 관측장비에 대한 점검도 이뤄진다. 한 번에 10~12명의 요원이 2주일가량 머물며 전반적인 점검을 한다. 망망대해에서 기상현상을 관측할 수 있는 고정 구조물이라는 희귀성도 주목할 만하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제주에서 열리는 문화행사에서는 이어도가 등장하는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거리 곳곳에는 이어도라는 단어가 들어간 간판도 즐비하다. 그만큼 이어도는 제주 사람들에게 친숙하면서도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이상향이다.

 거친 바다에 맞서 힘겹게 싸우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은 불행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어도를 꼽아왔다. 이런 의식세계에서 탄생한 신화와 전설도 많다. 설화들은 주로 뱃사람들이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이어도에 도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에도 그리던 극락(極樂)에 도착하고도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묻어 있다.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경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에서는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 전설의 섬”이라고 정의했다. 또 "한 번 그 섬을 본 사람은 영영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도 했다.

# ‘옥돔밭’을 지키려는 제주의 노력

이어도 해역은 제주 어민들에게는 오랜 시간 동안 '옥돔밭'으로 통했다. 15시간 이상 배를 몰아가면 풍어가를 부를 수 있어 풍요로운 바다였다. 옥돔은 사방이 바다인 제주에서도 단연 고급 어종에 속하는 생선이다.

옥돔밭을 지키려는 생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97년 한국해양연구소와 제주대 등은 ‘해양입국’이 각인된 크리스털 조형물을 이어도 바다에 안치했다. 제주도는 1999년 바다의 날을 맞아 ‘제주인의 이상향 이어도는 제주 땅’이라는 수중표석(水中標石)을 세웠다. 이어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대내외에 알리겠다는 제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최근 제주도의회는 매년 9월 10일을 ‘이어도의 날’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나라 해군과 연구기관이 이어도를 처음 찾은 것으로 알려진 1951년 9월 10일을 기념해 조례를 제정하려 한 것이다. 이 조례는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등을 고려해 일단 연기됐지만 이어도가 우리나라 바다임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자료: ㈔이어도연구회>
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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