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제제기에 그친 IMF총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재 세계경제가 심각한 혼란 속에 있으며 국제협력 강화만이 이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총론엔 합의했으면서도 실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냐는 각 론 단계에 들어가면 이해가 상충되어 서로 양보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이번 IMF 연차총회에서 두드러졌다. 각국 대표가 모두 석유파동 이후의 인플레와 국제수지 불균형을 우려하고 이에 대한 공동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빠짐없이 강조했으나 실질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없다. IMF 총회자체가 그런 성격의 회의다. 전통적으로 행동에 대한 합의보다 문제제기의 역할이 더 크다.
이번 IMF총회는 작년 나이로비 총회 때보다 이상 면에선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통화체제 개혁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석유파동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는 방안 모색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오일달러의 환류와 인플레 대책이 토의의 초점이 되었다. 물론 방법론엔 견해차가 많이 드러났다.
석유문제에 있어 미국의 입장은 오일달러 환류를 생각하기 전에 부당하게 폭등한 석유 가를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반해 극심한 국제수지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EEC·일본은 고 석유 가는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눈앞의 외환적자를 메울 수 있는 오일달러의 재 환류 체제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영국은 이의 구체안으로 3백억 달러 규모의 신규 석유금융제도를 창설하자고 제의했다.
미국은 신규 석유금융제도엔 반대했으나 대세가 그런 방향으로 기울어지자 소극적인 지지로 후퇴했다.
이번 IMF총회에서 산유국과 소비 국간의 정면충돌은 서로가 조심스럽게 회피했다. 미국을 제외하곤 석유가 인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산유국에 정면으로 대들기보다 어떻든 산유국을 회유, 오일달러 환류의 혜택을 입으려는 속셈인 것 같다.
비 산유 개발도상국의 불만은 이번 총회에서도 폭발되었으나 여전히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나고 말았다. IMF는 역시 부국들의 잔치다.
이번 IMF총회의 유일한 합의라 한다면 20개국 위에 대체될 잠정 위와 IMF·세은 합동 개발 위의 신설이라고 볼 수 있다.
합동 개발 위는 부국들의 부를 빈곤 국에 이전하는 문제를 검토, 이를 IMF 및 세 은에 건의하게될 것인데 막상 개발 도상국들은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자메이카의 쿠어 재상이『합동 개발 위가 서류만 쌓아두는 들러리 적 연구기구로 전락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비난한 점이 후진국들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오히려 핵심은 20개국 위에 대체될 잠정 위다.
잠정 위(20개국 재상으로 구성)는 영국이 제안한 신 석유 금융제도의 창설을 비롯, 국제통화 문제에 대한 광범한 작업을 하게될 것이다. 어떻든 이번 총회를 통해 석유문제나 오일달러 환류를 IMF를 통해 해결하자는 움직임으로 분위기가 성숙된 것은 IMF로선 하나의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신 경제질서의 확립을 위해 IMF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비테펜 IMF 전무이사는 비 산유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산유국은 약1백억 달러의 자금을 공여 하도록 제의했으며 이는 어느 정도 실현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비테펜 전무는 산유국을 설득, 33억 달러를 제공받아 이탈리아 등 18개국에 장기 저리로 배분한 실적이 있다.
인플레 문제는 미국이 계속 긴축정책의 강행을 주장한데 반해 특히 영국 등은 미국이 긴축정책을 어느 정도 완화하여 세계경기 회복에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반대입장을 취했다. 금 문제도 미국이 IMF 보유 금을 시장 시세로 팔아 국제수지 적자 국에 차관 대금으로 쓰자는 입장이나 프랑스는 보유 금을 팔 것이 아니라 대 산유국 차관의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김용환 재무장관은 오일달러의 환류 촉진, 개발도상국 발행 외화 채권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의 보증 등을 주장했는데 이는 국제수지 압박에 시달리는 한국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IMF 총회는 석유파동 이후 혼란한 상태에 있는 세계경제에 하나의 새 질서가 필요하다는 공감을 확인시킨 모임이 되었다.
그러나 새 경제질서를 어떻게 형성하고 또 각국이 어느 정도 양보할 용의가 되어 있느냐는 점에선 아직 탐색 단계다.
잠정 위와 합동 개발 위의 구성은 어렵고 험난한 새 경제질서 형성을 위한 공동작업의 초보적인 정초 단계라 볼 수 있다. <최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