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취와 공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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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구미의 일각에선 1930연대를 방불케 하는 대공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같은 모양이라고 그 당시도 그랬지만, 유력 은행들이 번번이 도산을 당한 것은 불길한 징조라는 얘기다. 미국의「프랭클린·내셔널」·서독의「헤르수타드」영국의「로이드·인터내셔널」등 구미의 이름 있는 은행들이 소리 없이 쓰러진 것이다.
이런 은행의 파산들이 방아쇠가 되어 결국 다른 모든 은행들도 그 영향을 받아 쓰러지면 세계는 일대 신용불안에 휩쓸리게 되지 않을까, 사실 이런 걱정도 없지 않다.
우선 그 원인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작은 은행보다는 크고 든든한 은행에 돈을 맡기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서 예금주들이 작은 은행의 돈을 찾아다가 큰 은행에 맡기게 되었다. 이것도 대자본가들에 의해 일시에 일어나는 뇌취(Run on Bank)현상으로 확대되면 작은 은행은 쓰러질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인은 원유가 급등에 따른「쇼크」에서 비롯된 것 같다.「오일·쇼크」는 세계에 속속들이「인플레이션」의 파문을 일게 했으며, 한편으로는 경기침체를 몰고 왔다. 이와 같은 상황은 단기자금의 성격을 띤「유러 달러」의 방향을 보다 안전한 곳으로 쏠리게 하였다. 따라서「유럽」은행의「달러」는 안전한 투자 대상을 찾아 미국으로 격류처럼 흘러들어 갔다. 이른바 예금이 벼락처럼 빠져나가는 뇌취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산유국의 석유 가가 중동전이래 4·7배나 급등한 경우를 놓고 보면 필연적이다. 이와 같은 세계경제의 격변은「유러달러」시장의 구조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또 국제적 신용의 격차 확대를 지적할 수도 있다. 1류 은행과 2류 은행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되게 끔 「유러달러」의 향방은 불안하다.
여기에 마치 불에 기름을 붓는 작용을 하는 미국이 있다.
「달러」화의 위신회복을 위해 미국은 이 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키신저」의 석유외교는「오일달러」의 미국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경을 두고 대공황을 예측하는 견해는 아직 비판받을 여지가 많다. 오늘의 세계는 30연대와는 달리 기술혁신에 의해 세계를 한결 좁혀놨다. 게다가 자유 경제 체제는 상호 의존의 유대를 보다 견고하게 했다.
또 국제경제 정책을 토의·협력하는 기구도 많다.
한편 유력한 경제학자들은 미국에 흘러드는「오일달러」를 어떤 국제협력 체제를 통해 각국으로 순환시키는「시스템」의 확립을 주장하고 있다. 비록 그 전조는 1930년의 대공황과 비슷하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능력은 그 당시와는 다른 것이다. 이번 IMF와 세계은행 총회는 그런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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