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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군국주의자로 불러라" … 아베고 신조어까지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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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베의 외교는 일본 국민에게 어필하는 필살기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후 국제적으로 코너에 몰리고, 한국·중국 외교에 구멍이 뚫려 ‘도넛 외교’란 비판을 받지만 일 국민들에게선 “외교 잘하는 총리”로 통한다. 일 언론들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듯한 동선과 도발적이고 선동적인 외교 수법’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2012년 12월 취임한 그가 2013년에 방문한 국가만 25개국. 올해는 오만·코트디부아르·모잠비크·에티오피아·스위스·인도·러시아 등 벌써 7개국이다.

 원래 일본 총리는 몸이 언제나 ‘국회 출석’에 매어 있어 외유는 장기 연휴나 국회 폐회 중에 몰린다. 아베는 이 틀을 깼다. 회기 중에도 직장인 번개여행처럼 해외로 날아간다. 이번 소치 올림픽 외교가 그랬다. 금요일인 7일 오전 9시 참의원 예산위에 참석, 11시52분 총리 집무실 귀환, 11시59분 ‘북방영토의 날’ 행사 참석, 낮 12시34분 하네다 공항에서 기자회견, 소치행 전용기 탑승, 이런 식이다. 그리고 일요일인 9일 저녁 귀국해 10일 오전 국회에 출석했다. 2013회계연도(2013년 4월 1일∼2014년 3월 31일) 총리 해외 방문 예산 8억4500만 엔(약 89억원)은 지난해 말 이미 소진됐다. 그래서 다른 예산에서 끌어다 쓰고 있다. 아베 외교는 ‘강한 일본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었다. 상대국 정상과의 관계나, 아베가 쓰는 외교 언어에서도 강한 남성적 측면이 강조된다. 일본 경제가 정체되고, 특히 2006~2012년 1년에 한 번씩 총리가 바뀌면서 잃어버린 일본의 존재감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선동적인 발언도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지난해 2월 첫 미국 방문 때 “일본이 돌아왔다”고 외쳤고, 9월 방미 때는 “나를 우익 군국주의자라고 부르려면 불러라”고 했다. 일 언론은 아슬아슬하면서도 명확한 어조로 관심을 증폭시키는 외교 언사를 ‘아베 고(語)’라 칭한다. 이런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자 출신 인사를 상근 연설문 작성자로 앉히고 내각심의관이란 직함까지 달아줬다.

 ‘의리’를 중시하는 것도 아베 외교의 특징이다. 지난해 5월 방문했던 터키를 10월에 또 가려 하자 참모들은 만류했다. 하지만 아베는 “에르도안 총리와 ‘일본과 터키 중 누가 올림픽을 유치해도 서로 칭찬해 주자’고 약속했는데 9월 IOC 총회장에 그가 정말 찾아왔더라.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터키행을 강행했다.

 아베는 자신의 외교를 ‘지구의(地球儀) 외교’라 부른다. “외교는 단순히 두 나라의 관계만 보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를 바라보듯 세계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6E08>)신문은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1개월에 걸쳐 유럽이나 중남미를 돌며 패전 이후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를 각국에 각인시켰다”며 “그의 외교 궤적을 아베 총리가 의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아베는 일본 총리로선 처음으로 취임 1년 만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돌았고, 12월엔 이들 국가 정상을 모두 일본으로 불러 모았다. 한국·중국에 대한 견제와 잠재시장 개척을 위해서였다. 지난해 6월엔 아프리카 정상 40명을 초청해 지원책을 쏟아냈고, 올 1월엔 본인이 직접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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