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기고

통일은 꿈꾸고 준비해야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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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병세
외교부장관

올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주년이다. 독일은 오늘날 G8이자 유럽 최강의 중심국가로서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모범국가로 탈바꿈했다. 반면 우리는 내년이면 분단 70년을 맞는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역사상 가장 긴 세월 동안 정전체제 하에 살고 있고, 가장 인도주의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조차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

  흔히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 통일을 갑자기 일어난 사건처럼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은 통일의 꿈을 갖고 외부 환경을 유리하게 주도해 나가는 등 철저히 준비한 결과였다. 우리의 여건은 통일 당시 독일이 처했던 상황에 비해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최근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불확실성은 냉전 종식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통일 비관론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월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화두로 던진 데 이어 다보스 포럼에서 “통일은 우리에게도 주변국에게도 대박”이라고 선언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부터 국민행복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대북 및 외교 정책의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난 1년간 노력해 온 결과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주변국의 시각이 많이 바뀌어 이제 통일을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한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 실현을 지지한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강력한 통일 한국의 역내 역할”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주요국들과의 성공적인 정상회담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같은 정책들을 중층적으로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통일 준비는 국내, 남북관계, 국제사회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지만, 통일을 촉진시킬 수 있는 대외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과거 서독이 수십 년간 주변국들과의 외교에 들인 노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외교부가 올해 업무 방향을 평화통일의 외교적 기반 구축을 위한 ‘평화통일 신뢰외교’로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일 과정에서 우선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첫째,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예방외교를 전개하고, 평화정착의 가장 큰 장애물인 북핵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다. 특히 북핵 불용에 대해 강화된 국제적 공조를 바탕으로 원칙 있고 실효적인 대응을 통해 북핵 포기를 유도해 나갈 것이다. 둘째, 정부는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및 나진-하산 물류사업과 같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을 통해 북한의 변화 유도를 위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 주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도 꾸준히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 기반을 확충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지난해 출범한 5개 중견국 협력 메커니즘(MIKTA)을 포함한 우방국 및 국제기구와의 공조를 강화하고자 한다. 경제 외교를 통해 통일 추진 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서울에 상주하며 북한을 겸임하고 있는 국가 대사관들과의 협의체인 ‘한반도 클럽’을 출범시켜 북한 정세에 관한 다층적 협의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방한 때 한민족의 통일에 대해 “역사의 힘과 인간의 희망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듯이 미래는 꿈꾸며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우리도 격랑에 표류하지 않으면서 통일의 혜택과 비용에 대한 명확과 인식과 비전을 갖고 주도적으로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윤병세 외교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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