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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양승태 대법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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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산을 자주 오르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람들 마음이 물 흐르듯 하면 판결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효정 기자]

나이는 뉘였뉘였한 해가 되었고

생각은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젓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본다.

- 조오현(1932~ )의 ‘산에 사는 날에’ 중에서

나는 시에 별 흥미가 없었다. 잘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내가 새로이 시에 눈 뜨게 된 것은 조오현 시인의 시를 접하고부터다. 신흥사 조실(祖室) 스님인 이분은 고승(高僧)이기 이전에 일찍부터 뛰어난 시재(詩才)를 발휘하며 우리 시단을 이끌어 오는 시인이다. 이분의 시에는 우리네 삶의 오만 가지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때론 담담하게, 때론 거칠게 써 내려간 인간의 이야기 속에서 인생을 달관한 묵직한 포스가 묻어난다.

 짧은 몇 줄에도 엄청나게 많은 뜻이 담겨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니’라는 짤막한 시가 있다.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바동거리며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이, 그 인생에 대한 온갖 상념이 이 짧은 글귀에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젖먹이 새끼를 떼고 하릴없이 팔려가는 암소의 속마음을 읊은 ‘어미’를 읽다 보면 어느 새 가슴 저미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른다. 어찌 소의 삶만 그럴까? 성자를 하루살이 떼에 비유한 ‘아득한 성자’에서는 실체를 모른 채 공허한 우상을 좇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회자되기도 한다.

 인생 40이 되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나아가 석양의 나이에 이르면 숫제 외모에서 마음가짐이 다 드러나나 보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양의 어떤 저명한 학자가 했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한국은 정말 잘사는 나라인데 사람들 표정이 전혀 행복한 것 같지 않아 놀랐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면 천금이 있어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데 혹시 우리도 끊이지 않는 욕심으로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마음을 비우고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사는 것이 조물주가 세운 행복의 법칙 아닐까.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이 때문인 모양이다.

양승태 대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