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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박근혜 정권의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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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단임제는 시의 세계다. 시는 압축이다. 단임제의 구성·서술은 산문의 중임제와 다르다. 대통령 단임제는 내각제의 문법과 맞지 않는다. 시는 단판 승부다. 5년 단임제는 압축의 한판이다.

 시인은 승부사다. 언어 채집에 목숨을 건다. 단임의 국정 성취는 시적 치열함 속에 이뤄진다. 단임제는 국정 승부사를 요구한다.

 올해는 박근혜 정권 2년차다. 집권 2년째는 내치다. 정권의 민심 평가는 내치로 갈린다. 박 대통령은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그 중심에 규제 혁파가 있다. 우선 대상은 서비스 산업이다.

 박 대통령은 “관광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3일 관광진흥회의)라고 했다. 회의에선 규제 개혁의 결의가 넘쳤다. ‘비정상의 정상화’ 기치를 내걸었다. 노무현·이명박 정권의 모습도 비슷했다. 그때도 ‘규제 타파로 일자리 늘리기’를 외쳤다. 실천은 미흡했다. 결말은 낙담으로 끝났다. 규제는 난공불락-.

 규제는 공직자 권력이다. 그것은 통제와 간섭 수단이다. 공무원은 기업 활동을 통제한다. 산업 폐수의 기준치는 황당하다. 사람의 먹는 물보다 깨끗해야 한다. 그 기막힌 규제로 관료는 ‘수퍼 갑’이다. 규제는 기득권이다. 돈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신참의 시장 진입을 견제한다.

 공직사회 내부도 비슷하다.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은 독점 권한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맡는다. 지방자치단체는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현장 대응은 늦춰진다. 철새는 날아다닌다. 전염 속도가 빠르다. 검진 주문은 몰린다. 판정은 늦어진다. 예산 낭비는 엄청나다.

 K팝, 한류 드라마의 성취는 탁월하다. 독보적인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관료가 간섭하지 않았다. 한식 세계화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공직자들이 거기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규제 공화국의 낯익은 풍경들이다. 그 장면에 양식 있는 공무원들도 난감해한다. 공직사회 대부분 구성원들은 실력과 봉사정신을 갖추고 있다.

 박 대통령은 판을 크게 벌였다. 규제 개혁은 국제적 공약으로 커졌다. 지난달 박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했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들에게 약속했다. 그 전선에 배수진이 깔린 것이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전선을 압축하라”고 주문한다. 개혁 대상은 의료, 관광, 교육, 금융, 소프트웨어의 서비스 산업이다. 그중에서도 경중과 완급을 매겨야 한다. 백화점식 나열은 실패한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노무현 정권 청와대 정책실장)는 “세련된 전략,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승부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진 전 부총리는 ‘결연한 빅 푸시(big push)’를 강조한다. 그는 “점진적 접근, 지엽적인 규제만 다루면 소리만 요란하다. 규제는 덩어리째 뽑아야 한다”고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전선 사령탑이다. 그의 오픈 게임 실적은 저조하다. ‘손톱 밑 가시 뽑기’ 작업은 치열하지 않다. 그의 말실수(어리석은 사람 탓)는 정책 추진의 약점으로 작동한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하경제 양성화에 주력했다. 그 정책의 성적표는 시원치 않다. 부작용은 심각하다. 세무조사는 거칠어졌다. 건강한 기업들의 자존심은 상처 났다. 기업가 정신은 위축됐다.

 규제 개혁은 난제다. 현오석-조원동 팀은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5일 선보인 박 대통령의 ‘진돗개 정신’을 구현할까. 반발과 저항은 거셀 것이다. “공직사회의 사기가 떨어진다, 좋은 규제도 없애려 한다”는 루머가 퍼지기 마련이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관료의 속성은 현상 유지”라고 말한다. “대통령 주변에 관료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과거 정권 때 일몰제는 사소한 규제를 없앴다. 대신 힘세고 나쁜 규제가 늘어났다. 규제 영향평가제의 효과도 미진하다. 현오석-조원동 팀은 규제 총량제를 다듬고 있다. 그 파괴력은 미지수다.

규제는 박근혜 정부의 승부처다. 정권 내부에 ‘빅 푸시의 열정, 목숨 걸 사람’은 찾기 힘들다. 대통령 혼자서 챙길 수는 없다.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은 존재한다. 그 순간 시인은 절정의 언어를 낚아챈다. 투우사의 결행 시점이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진실의 순간은 정책 집행에도 있다. 타이밍을 포착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국정 승부사가 나와야 한다. 규제 개혁은 경제를 재도약시킨다. 2030세대의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복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용인술 언어는 간결하다. “도와주세요”라고 한다. 때로는 간절하다. “저와 목숨을 걸지요”라고 한다. 규제 혁파에 목숨을 거는 승부사는 없는가.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