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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성공한 이들의 '탈선'을 이해할 수 없다는 20대 대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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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경영학을 전공하는 20대 중반 남학생입니다. 멋진 최고경영자(CEO)를 꿈 꾸고 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CEO나 우리 사회 리더의 리더십에 관심이 많아 살펴보다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더군요. 노력하고 고생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왜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자신을 망칠까요.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기 절제를 했을텐데 막상 성취하고 나서는 왜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행동을 할까요.

A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하죠. 맞는 말입니다. 날개가 없으면 올라가지 못하니 추락할 수도 없겠죠. 인생사, 누구나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굳이 곤두박질칠 필요는 없겠죠. 추락이 아니라 여유롭고 우아하게 착륙하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높게 상승한 후 수직으로 떨어진 정치인과 연예인 등 유명인이 적지 않습니다. 어렵게 다들 부러워할 사회경제적 위치에 도달했는데 도박이나 성적인 문제 행동 등 한 번의 실수로 이루어 놓은 걸 다 망쳐버린 셈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죠.

 그래서인지 유명인의 추락이 있으면 심리분석을 요구하는 언론사 기자의 요청이 꼭 옵니다. 솔직히 질문을 받으면 난감합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분석해 달라고 말이죠. 그래서 항상 먼저 다른 전문가는 어떻게 답했는지 되물어봅니다. 보통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격적 문제가 있었다”거나 “성적 충동 조절이 되지 않는 사람” 식의 수위가 센 답이 많더군요. 원래 문제있는 인간이었다는 거죠.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문제 없이 윤리적, 사회적 규칙을 잘 지켜온 사람도 성취 후 엉뚱한 이탈 행동을 할 가능성이 늘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뭔가 성취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이란 결국 일이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뇌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우리 뇌에는 감성 에너지를 빌려 주는 감성 은행이 있습니다. 감성 은행에서 빌린 에너지를 활용해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사회경제적 성취를 합니다. 문제는 사회경제적 성취 후 바로 이 감성 은행이 채권, 즉 빌려준 에너지를 회수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간 내가 희생해서 에너지를 빌려 주었으니 이젠 갚으라는 거죠. 다시 말해 그간 희생한 감성을 보상할만큼의 강력한 행복을 요구합니다. 이 때 쾌락 시스템과 연관된 감성 보상 시스템이 주로 작동하면 도박이나 성적 행동이 튀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꼭 도박이나 섹스 중독이 아니더라도 다른 쾌락적 자극을 좇는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쾌락 시스템 자체는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 성취 후 몰려오는 허무감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의식을 하든 안하든 우리는 사회경제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뜁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게 그렇게 성취하면 허무감이 몰려옵니다. 성취를 했으면 뿌듯하고 기뻐기만 할 것 같은데 성취 후 허무감은 왜 찾아오는 걸까요. 성취 자체가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런 말이야야말로 허무한 답 같습니다.

 성취 후 허무감은 감성 배터리가 방전됐다는 신호입니다. 성취를 위해 열심히 일할 때 우리는 감성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우리 뇌의 감성 은행에서 빌려오는 거죠. 뭔가를 빌려주는 건 투자입니다. 원금 회수가 아니라 원금 이상 이윤을 회수하는 게 투자의 목적이고요. 감성 은행은 지금 감성 에너지를 빌려주고 나중에 감성적 보상, 즉 행복감을 더 크게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 감성 에너지를 투자하는 겁니다. 성취를 위해 달려갈 때 허무감을 느껴지 않는 건 감성 은행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취를 이루면 곧바로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고 회수에 들어갑니다. 그때 받는 느낌이 허무감입니다. 성취가 클수록 더 큰 허무감이 몰려 옵니다. 투자로 대박이 났으니 더 큰 이익을 회수하려고 하는 거죠.

 감성 보상을 위해 쾌락 시스템을 주로 활성화하면 도박이나 잘못된 성적 행동, 권력형 비리 등이 나타납니다. 쾌락 시스템은 생존과 연결돼있어 매우 강력합니다. 평소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라도 술 한 잔 등 통제가 약해진 상황에서 쾌락 시스템이 작동하면 자기 자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망칠 수 있는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죠.

 현실 속 은행은 돈을 투자하고 돈을 회수합니다. 하지만 마음(감성) 은행은 돈보다 사랑을 중요시합니다. 더 큰 성취를 하려는 마음 속엔 나를 더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고싶은 욕구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사랑을 받는 건 아닙니다. 사랑을 베풀고 멋진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자원을 더 확보한 건 분명하지만요.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이나 자존감은 돈 많은 순위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취도 중요하지만 성취 후 허무감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자기 사랑 시스템, 즉 연민시스템이 활성화하지 않고 쾌락 시스템이 주로 작동하면 순간적인 만족감을 위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도박에서의 스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적 쾌락, 생존과 관련 없는 권력형 비리는 사실 변질된, 그러나 처절한 사랑에 대한 집착의 다른 모습입니다. 고생해서 성취했는데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느냐는 절규인 셈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쾌락시스템은 빠른 감성 보상을 하지만 내성이 생겨 더 큰 자극 없이는 허무감이 점점 커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반면 연민시스템은 쾌락시스템보다는 반응속도가 느리지만 내성 없이 에너지 충전을 해주는 발전소입니다. 발전(發電)을 위해서 연료가 필요하듯 내 마음의 발전소인 연민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서도 연료가 필요합니다. 좋은 연료는 사람과 자연·문화입니다. 여유를 갖고 사람·자연·문화와 교감할 때 충전이 일어납니다.

 감성 에너지가 방전된 직원이 많은 조직은 조직 전체가 비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친 뇌는 쾌락 시스템을 작동시켜 평소보다 윤리감각을 느슨하게 만들어 버리니까요. 뻔히 걸릴 엉뚱한 일을 저지르게 합니다.

 윤리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규제나 개인의 도덕심을 강화하는 것 외에 내 뇌와 잘 놀아줘야 합니다. 성취 후 허무감을 어루만져 줘야 한다는 겁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래 e메일 주소로 고민을 보내주세요. 윤대현 교수가 매주 江南通新 지면을 통해 상담해 드립니다. 사연을 지면에 공개하실 분만 보내주십시오. 독자분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익명 처리합니다. yoon.sn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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