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수술 이야기]19. 외로운, 그리고 무거운 싸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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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수술장 공기는 언제나 차갑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머리카락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수술 모자로 머리를 감싼다. 미세한 부위를 잘 볼 수 있도록 이마에 탄광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생긴 조명등을 달고, 사물이 서너 배로 확대되어 보이는 루페 (수술용 안경)를 쓴다. 소독한 손이 닿지 않도록 발끝으로 버튼을 누르고 문 안으로 들어서면, 푸른 소독포 위에 늘어선 수술도구들이 은색으로 반짝인다.

수술방에서는 수술대를 멸균 상태로 가정한다. 따라서 오염된 내 몸이 조금이라도 수술대에 닿지 않도록 소독된 장비로 완전히 나를 포장한다. 그리고 나서 수술대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다. 이제 시작이다.

가끔 전쟁을 하는 기분이 든다. 갑옷을 입고, 칼을 들기 직전 같은 느낌이다. 외과의사에게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수술할 때만큼 고독한 순간은 없다. 믿을 것은 나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두 손 뿐이다. 시시각각 복병처럼 달려드는 출혈, 떨어지는 혈압과 싸워 나간다. 그 시간은 때로는 새벽이고, 때로는 늦은 밤이며, 때로는 열 시간 넘게 이어진다.

이 싸움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누군가의 하나뿐인 심장이고, 생명이며, 행복이다. 그리고 이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하고 책임질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 뿐이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고, 아무도 같이 책임져 줄 수 없다. 그렇게 인위적인 멸균 상태의 전장에서 나는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을 보냈고 수도 없이 많은 싸움을 했다. 대부분의 싸움들은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16년 전, 처음으로 수술장에서 직접 제작한 SC ring을 이용했던 수술을 잊을 수 없다. 1997년 말이었다. 환자는 대동맥근부가 늘어나서 발생한 대동맥판막폐쇄부전증 환자였다.

나는 ring을 이용한 대동막 판막 성형술의 효과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자의 선택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인공판막치환술이 그간 주요 치료법이었고, 나 역시 인공판막치환술을 다수 집도해 왔으나, 기계 판막을 삽입하지 않고 대동맥 판막 성형술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부작용 없이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

고맙게도 환자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신뢰를 보여줬다. 자신은 새로운 수술법을 택하겠다고 하면서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수술 전날, 나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새로운 형태의 대동맥 판막 성형술의 전 과정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튿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결연한 마음으로 수술에 임했다. 인조혈관을 사용해 ring을 만들고, 근부에 삽입하고, 꿰매고, 미세한 출혈들을 차단해 나가고, 무리 없이 기능하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10여년의 연구가 드디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때 수술 받았던 환자는 지금까지도 항응고제를 복용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근거 없는 비난으로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다.

심평원의 행위정의의 '대동맥 판막 성형술'은 '의사의 재량껏 성형'하는 수술법이지만, 그때부터 내게 있어 대동맥 판막 성형술은 분명한 절차와 도구를 사용하는 체계 있는 수술이었다.

그 후 나는 일정한 공식에 따라 ring 을 만들어 근부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판막과 근부의 문제들을 교정해 나갔고, 많은 환자들이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을 확인했다. 만일 판막 치환술로 수술했다면, 일상 생활에 제한이 많았을 많은 환자들이 아무 제한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가끔 외롭고 무거운 싸움으로 점철된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인생이 좋은 인생인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나의 삶은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그렇게 행복한 삶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건강하게 회복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분명히 행복했고, 더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수술법, 더 많은 환자들의 완치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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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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