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골골골골 … 뻥 뚫린 홍명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10억원을 들인 축구 대표팀의 브라질~미국 전지훈련 성적표는 민망했다. 해외 전지훈련 무용론까지 제기됐고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한 감독 리더십도 도마에 올랐다. 2일(한국시간) 미국과의 평가전 도중 머리를 감싸 쥔 홍명보 감독. [카슨(미국)=뉴시스]

해외 전지훈련 무용론(無用論)까지 제기됐다. 홍명보팀 전지훈련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홍명보(45)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슨에서 열린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0-2로 졌다. 지난달 30일 멕시코에 0-4로 완패한 데 이어 또 다시 졸전이다. 미국 전지훈련 중 세 차례 평가전 결과는 1승2패, 1골6실점. 1.5군이 나선 코스타리카에만 1-0으로 이겼다.

국내파 김신욱(울산)은 전지훈련 3경기에서 1골에 그쳐 원톱 굳히기에 실패했다. [카슨(미국)=뉴시스]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미국으로 이어진 3주간의 전지훈련을 위해 약 10억원을 지원했다. 4년 전 남아공 월드컵 1월 전지훈련비 8억원보다 많다. 홍 감독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많은 소득을 거둔 전지훈련”이라고 말했다. 6월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팀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 1월에 관행처럼 실시하는 동계훈련에 대한 무용론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 전지훈련은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모두 빠졌다. K리그(20명), 일본 J리그(2명), 중국 수퍼리그(1명) 등 23명이 참가했다. 리그 종료로 한 달 이상 쉰 선수들이 A매치를 뛸 만한 체력과 경기력을 끌어 올리기 쉽지 않았다. 하대성(29·베이징)은 전지훈련 첫날 부상으로 귀국했다. 개인 트레이너까지 둔 김신욱(26·울산)조차 코스타리카전에서 70분을 뛴 뒤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동기부여 실종이다. 홍 감독은 지난해 10월 사실상 본선 체제로 브라질과 평가전을 치렀다. 이번 전지훈련 멤버 중 브라질전 베스트11에 포함된 선수는 김진수(22·니가타), 이용(28·울산), 정성룡(29·수원) 등 3명뿐. 나머지 8명은 이청용(26·볼턴), 손흥민(22·레버쿠젠), 기성용(25·선덜랜드) 등 해외파였다. 염기훈(31·수원)은 “국내파도 경쟁력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축구팬들은 세 차례 평가전에서 유럽파의 빈자리만 진하게 느꼈다.

 해외파-국내파를 아울러 23명을 끌고 가야 하는 홍 감독의 리더십도 도마에 올랐다. 홍 감독은 전지훈련 전부터 “최종 명단 80%는 윤곽이 잡혔다”고 말했다. 이미 유럽파 위주로 주전 밑그림을 그렸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이다.

목표의식이 실종된 국내파에겐 자신만의 필살기를 펼쳐 조커로라도 본선 무대를 밟겠다는 절실함이 보이지 않았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멕시코전 후 “나도 2002년 월드컵 전 프랑스·체코에 5대0으로 져봤다. 4대0으로 진 후배들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면서도 “국가대표라면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러다 보니 전지훈련 중에도 관심은 대표팀이 아닌 유럽파 ‘양박(兩朴)’에게 쏠렸다. 박지성(33·에인트호번)이 대표팀 복귀 여부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뒤이어 박주영(29·왓퍼드)의 이적 여부가 핫이슈가 됐다. 뜨거운 태양 아래 구슬땀을 흘린 국내파는 뒷전으로 밀렸고, 이들의 박탈감은 컸다.

 전지훈련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홍명보팀은 20일간 브라질 이구아수~미국 LA~샌안토니오~LA를 오가는 강행군을 했다. 오는 6월 본선에서 브라질 쿠이아바~포르투알레그리~상파울루로 이어지는 죽음의 일정을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 이동 거리와 기후·시차 등 시뮬레이션을 치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허정무팀도 그해 1월 조별리그를 치르는 도시에서 훈련과 평가전을 병행해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뤄냈다.

 홍 감독은 미국에서 곧바로 유럽으로 향한다. 박지성을 만나 복귀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박주영 등 유럽파를 점검할 예정이다. 홍 감독은 “그리스와의 평가전(3월 6일·아테네)에서 유럽에서 뛰는 선수 등 정예 멤버를 모두 소집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 중 가장 좋은 선수를 선발하겠다. 그 경기가 마지막 테스트다”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국내파 선수들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박소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