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출동 20초 빨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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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서울 광진소방서 구의119안전센터 소속 김일환(33) 소방사가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 덕분에 좁은 골목길의 목표 지점을 5분 만에 찾아냈다. 김 소방사는 “도로명 주소를 시행하면서 길 찾기가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구급출동! 구급출동! 자양로 37길 OO! 음주 노숙자 발생.”

 지난 22일 오후 4시, 서울 광진소방서 구의119안전센터에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이학곤(55) 소방장과 진광일(33) 소방교가 구급차에 급히 올라탔다. 이 소방장 손에 들린 지령 쪽지엔 출동 장소의 지번 주소와 도로명 주소가 함께 적혀 있었다.

 구급차가 출발하자 내비게이션 화면에도 지번 주소와 도로명 주소가 동시에 떴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눈에 띄게 부정확해졌다. “찾아가기 힘들 것 같다”고 동행한 기자가 걱정하자 진 소방교가 집집마다 붙은 도로명 주소 번호판을 가리키며 “집 앞에 도로명 주소 번호가 순서대로 붙어 있어 헷갈릴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출동 5분 만에 현장 도착 성공. 이 소방장은 “여기처럼 주택 밀집지역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종전까지는 지번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도로명 주소 덕분에 요즘엔 더 빨리 현장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서울 삼성2동 파출소의 한 경찰관은 “하루 15~20건의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는데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출동 전에 머릿속에 대략적인 위치 개념을 잡을 수 있어 3분 걸리던 출동시간을 20초 정도 단축했다”고 말했다.

 도로명 주소가 시행된 지 한 달 남짓이다. 그동안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았다. 그러나 본지 취재팀이 현장을 동행취재한 결과, 도로명 주소의 편리함과 신속함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여전히 일부 불편함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도로명 주소가 지번 주소에 ‘KO승’은 아니더라도 ‘판정승’을 했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정착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새 주소의 진가는 특히 골목길에서 발휘되고 있다. 건물마다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어 길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소방 분야뿐 아니라 현장 방문이 많은 사회복지 공무원들도 도로명 주소 사용을 반긴다. 서울 중구청 복지지원과 김화영 주무관은 “지번 주소는 번지가 뒤죽박죽이라 길 찾는데 애를 먹었는데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쉽게 찾는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택배업체에서도 도로명 주소는 큰 불편 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한진택배 한승준 과장은 “설 특수 때문에 평소보다 배송 물량이 1.5배 많았는데도 지난해부터 도로명 주소 시행을 앞두고 시스템을 잘 갖췄기 때문에 배송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앙우체국 길준혁(32) 우편담당 주무관은 “지번 주소는 그물망처럼 무작위로 돼 있어 같은 지역에서 오래 일한 직원은 익숙하지만 신참 집배원들에겐 고역이었다. 도로명 주소로 바뀐 뒤로는 번호가 순서대로 배치돼 있어 홀짝수를 통해 어느 구역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도로명 주소 도입의 산파역을 한 박헌주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한국인이 영국에 가서 좌측 차로로 운전할 때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새로운 도로명 주소 시행에 따른 초기 불편은 충분히 예상됐다”며 “스마트폰도 처음 바꾼 뒤 얼마 동안은 불편하겠지만 편리하기 때문에 계속 쓰게 되는 것처럼 도로명 주소도 곧 정착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별취재팀=장세정(팀장)·신진호·최모란·고석승·조한대·이진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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