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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제자=김홍일|「김일성」이란 이름의 최초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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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만주의 중공당과 그 당군인 동군인민혁명군이 조작, 결성됨에 있어서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담당했던 역할은 매우 컸으나 그들 속에 김성주는 끼지 못했다.
동북 인민혁명군 속의 한인간부들은 1934, 5년의 민생단 사건으로 대부분이 숙청되었고 또 혁명의 기초를 소수민족에서 다수민족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에 따라 한인들은 간부가 되기 어려워진 1935년 가을께부터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의 간부 속에 김일성이란 한인이 등장한다.

<소련서 파유된 성남태생>
제2군은 한인 주진의 유격대가 기초가 되어 1934년3월에 간도에서 발족했었다. 군장은 왕덕태(중국인)였고 그 제1독립사 사장이 주진 이었다. 그리고 이 주진은 민생단 사건으로 1935년1월에 억울하게 살해될 뻔했다가 간신히 탈주하고 말았었다. 또 제2군의 제2 독립사는 1934년5월에 발족했었다.
이 간도지방에 근거를 두었던 제2군이 1935년의 일만측 추이공격에 쫓겨 제1사는 남쪽의 무송현삼도류하 지방으로 제2사는 북쪽의 영안현남호두 방면으로 옮겨갔는데 이 제2사의 한 간부로 김일성이란 사람이 끼여 있었던 것이다.
제2군의 2개의 사가 남북으로 갈렸으므로 남쪽으로 옮긴 제1사는 2지역을 유격구로 하고 있던 제1군(군장 양정우)과 합류하게 되었고 북쪽으로 간 제2사는 그 지역을 유격구로 하고 있던 제5군(군장 주보중)과 합류하게 되었다. 제2군이 자기의 유격구인 동포를 지키지 못하고 양분된 채 타군의 유격구로 들어간 사태에 직면하여 중공당만주생위는 그해(1935년)말에 신년도(1936년)군사행동지침을 새로 시달했다. 새로운 부대편성(별표(우))과 유격구역의 할당으로 제2군 및 제5군의 협동작전을 가능케 하기 위한 조치였다

<중선지휘군부 김일성도 등장>
제2, 5군 합작의 총 지휘부 정치위원이며 위하부대의 책임자로 적힌 「김일성」의 이름이「김일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는 제2군제2사 소속이었으며, 제2군은 1934년3월에, 그리고 제2사는 1934년5월30일에 결성되었으므로 김일성은 그 무렵부터 동북인민혁명군에 관계했다고 볼 수 있고 동시에 그는 정치위원으로 있은 것으로 보아 중공당의 한 간부였을 것도 틀림없다. 이 김일성은 물론 김성주가 아니다. 이 김일성은 그때 이미 「모스크바」공산대학을 마치고 소련으로부터 파견되어 간도에 들어왔던 사람이다. 그는 함남태생이며 간도에서 성장했다. 당시(1935년 현재) 나이 34세의 장년이었다. (김성주는 당시 23세)
제2, 5군 합작의 동부대 정치위원으로 있는 이광림은 제5군 제2사의 정치위원이었던 한인 이광림이며 부 지휘로 있는 이형박은 제5군의 기초였던 마적두목 평남양이다. 1936년4월 중순 영안현경박호 서남방 대구에서 열렸던 제2군장 왕덕태, 제5군장 주보중, 기타 제2, 5군 수뇌부 및 동북의용군(구 동북정권계 항일부대) 총 사령 오의성과 그 간부 등 수십명의 연석회의에서 부대는 제2, 5군 합작의 혼성부대로 재편성됐다.(별표(좌))
여기서 김일성은 중선지휘부의 정치위원인 동시에 1백명 가량의 단위부대의 책임자가 되어있다. 위하보다는 길림쪽으로 훨씬 남하한 액목 일대를 유격구로 하고 있다. 간부 중 방진성·이광림이 한인임은 확인된다.
이와같은 혼성부대의 조직은 군제의 개편이 아니라 단지 공작상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으며 빼앗긴 제2군 지역의 회복이 그 목적이었다.

<없었던 「조선인혁군」>
북한에서는 여기에 등장한 김일성이 바로 김성주인양 역사를 꾸며놓고 있다. 그래서 제2군제2사가 일만측의 공격에 쫓겨 동만의 근거지를 버리고 북만쪽으로 옮겨갔던 사실을 원용하여 그것을 김성주의 「북만원정」이라고 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김성주가 1934년3월에 「조선인민혁명군」(실재하지 않았음)을 발족시켰다고 하던 때가 있었는데 1931년3월은 다름 아닌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이 발족한때이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1931년3월에 결성된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의 제2사가 1935년 가을에 쫓겨 북만쪽으로 이동했던 일을 김성주가 조선인민혁명군을 데리고 북만으로 원정했던 일로, 또 제2사에 속해있던 김일성이란 사람을 김성주인 것같이 이중으로 위작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김성주가 동북인민혁명군에 있은 것이 아니라 따로 조선인민명군이란 것을 이끌었다고 하고있기 때문에 이 제2군제2사의 김일성이 바로 김성주라고는 안 한다. 그저 김성주가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었다고 하고 있을 뿐이다.

<「해방투쟁사」멋대로 날조>
그러나 실은 1949년에 북한에서 처음 나온 「조선민족해방투쟁사」에 앞서서 김성주의 경력을 소개하는 글이 따로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 1946년8월15일자의 북조선 예술총연맹편 해방1주년기념 김일성장군 찬양특집 「우리의 태양」이며 다른 하나는 같은 해에 출판된 한설야저 「영웅 김일성 장군」이다.
이 두편의 책자는 다같이 김성주가 직접 말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경력을 선전한 것인데 여기에는 김성주가 중공당동만특위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있었다는 것과 그 제2군의 김일성이 바로 김성주였다고 써놓고 있다. 이것은 전혀 거짓말이다. 김성주가 언제부터인지는 확인 할수 없어도 동북인민혁명군의 대원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 간부로 있었던 김일성과는 전혀 딴 사람인 것이 입증되고 있다. 【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차례>
서장 5인의 김일성
제1장 김성주의 소년시절
제2장 30년대의 조선혁명군
제3장 동북인민혁명군
(25)민생단사건과 무관한 김성주
(26)이홍광과 동흥사건
(27)김일성이란 이름의 최초기록
(28)동북항일련군 2군6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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