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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동기문화 재검토의 실마리|김원용 박사 보고 국내출토 최고의 요령식 동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울대박물관장 김원용 박사가 지난1일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행한 『한국출토 요령식 동검』에 관한 보고는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 문화를 해명하는 열쇠구실을 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김 박사는 『우리 나라에서 요령식 동검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한국 청동기문화의 편년과 문화내용 및 주민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 막중한 의의를 지적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는 동검의 일반형인 세형 동검보다도 훨씬 시대가 오래된 고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주출토의 요령식 동검은 동검의 조형으로서 한국과 서부일본에서만 발견되는 세형 동검의 원산지가 될 것이라 믿어왔는데, 그 전형적 요령식 동검이 바로 한반도에서도 발견됐다는 점에서 학계는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요령식 동검이란 검신의 상반부가 흡사 회처럼 되고 좌우 날의 중간 부에 날카로운 돌기가 있으며 그 하반부가 잘록하게 수축됐다가 날이 동그스럼하게 퍼진 형태이다. 동검의 뼈대를 이루는 칼등의 능부는 둥글고 모지지 않았다. 세형 동검이 곧게 날카로운 느낌인데 비하여 요령식은 넓적하고 날이 얇다.
그 첫 본보기가 중국 만리장성의 바로 바깥에 해당하는 요령성 조양현 십이대영자의 토광묘에서 출토된「만주식 동검」혹은「십이대영자 동검」이라고도 한다. 시대는 BC6,7세기께. 그런데 최근엔 그와 똑같은 것을 중공에 의하여 같은 요령성 영성현 남산근촌에서도 찾아냈는데, 그것은 BC8,9세기께 춘추기 초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요령지방은 지금 우리 나라와는 정치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별개로 변했지만 2천수백년 전에는 같은「속이」의 지역이며 같은 「동검문화 지대」.그런데 세월이 흘러 BC3세기 깨에는 요령식동검이 토착화하여 이른바 한국식 세형 동검의 출현을 보게된 것이다.
이같이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동검 중 가장 오래된 요령식동검이 우리 나라에서도 발견됐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 칭동기시대의 시작을 확실하게 짚어보는 결정적인 증빙자료가 된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청동기가 전래되면서부터 세형 동검이 출현하기까지의 기간. 한국식 세형 동검이 나타난 것은 기원전 3세기께인데 이때부터는 초기 철기시대에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 나라 출토의 청동기가운데 이 기간동안에 해당하는 명백한 유물이 없으며 특히 전래 초기 것은 전혀 없다.
김원용 교수는 그래서 청동기의 전래초기를 기원전 6,7세기로 어렴풋이 짚어보고 있는데 학계의 견해에 따라서는 BC10세기 이전으로 소급해보기도 한다.
이 청동기 시대는 한반도에 있어 무문토기문화시대에 해당되며 그러한 유적의 방사선 탄소에 의해 측정된 연대는 ▲파주옥석리주거지=BC559 ▲제천황석리지석모=BC410 ▲양주수석리주거지=BC280 혹은390 ▲부천시도패총=BC520 ▲함북무산주거지=BC480등. 그러나 이들 유적에서 청동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발표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이 동검은 물론 경북지방이라고만 전할뿐 확실한 출토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소장자도 모씨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엔 다시 충남에서도 이 같은 요령식동검의 출현이 전해지고 있어서 한국출토의 확실성은 더욱 굳혀진 셈이다.
김 박사는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황해유역의 중국청동기 문화와 크게 대립하는 만주·한국의 청동기문화 지대를 설정해야 될 것 같다.』 고 마무리지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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