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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IT의 M&A 붐 … 공정경쟁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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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9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노키아가 합병을 선언한 이래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단순한 기업합병이 아니라 시장의 생태계를 변화시킬 만큼 경쟁 판도가 크게 바뀔 전망이다. 특히 휴대전화 시장뿐 아니라 관련 특허를 둘러싼 시장 판도의 변화가 주목된다. 따라서 합병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전후의 맥락에서 그 파급 영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합병으로 인해 별로 잃을 것이 없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를 반기고 있다. 미국과 EU의 경쟁당국은 이미 조건 없이 두 회사의 인수합병(M&A)을 승인했다. 휴대전화 시장에서 기력이 쇠잔한 노키아도 살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MS에 수직계열화의 모멘텀을 제공한다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쟁정책이라기보다는 산업정책적 판단에 더 가까운 논리다.

 문제는 M&A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양도자인 노키아가 휴대전화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애물단지인 휴대전화 사업부만 양도하고 이동통신 관련 특허는 그대로 보유한 채 ‘특허괴물’이라고 불리는 특허관리전문회사(NPE)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자일 당시 보유하고 있던 특허를 경쟁사업자와 교차 사용하던 때와는 상황이 180도 다른 처지다. 앞으로 노키아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에 대한 사용료는 부르는 게 값이 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특허료가 두 자릿수 증가율로 늘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벌써 특허권 남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양수자인 MS도 비즈니스 영역만 넓어진 것이 아니다. 한 손에는 모바일 단말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단말기 제조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 특허를 들고 협상력을 키운 것이다. PC나 휴대전화용 소프트웨어 개발자임을 자임하던 MS와 직접 휴대전화를 제조하는 사업자로 변신한 MS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PC 시장에서 누리던 독점적 영향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누리고자 할 것이다.

 MS와 노키아 두 회사가 합병하게 되면 유럽에는 휴대전화 사업자가 없고, 북미지역을 제외하면 MS의 경쟁사업자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만 존재하게 된다. M&A가 성사된 이후의 MS는 보유 특허를 단순한 거래상대가 아니라 경쟁상대에 제공하는 만큼 견제 차원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특허료를 요구하거나 차별적인 대우를 하겠다고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과도한 특허료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노키아와의 전략적 합병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앞으로 휴대전화 시장에서의 합병이 특허싸움으로 번질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되면 휴대전화의 생산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곧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합병에 따른 새로운 시장질서가 미칠 직접 효과보다 합병의 부수 효과인 특허싸움으로 파급되는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되면 소비자들은 단말기 사용에 따른 특허사용 대가를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 그만큼 소비자 후생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경쟁당국으로서도 이를 마냥 도외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기업 간 M&A가 단지 시장구조뿐 아니라 생태계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면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합병으로 인한 시장상황의 변화를 전과 후의 맥락에서 동태적으로 심의해야 마땅하다. 합병이라는 변수의 여파가 다른 데로 미치고 이것이 경쟁 제한과 소비자 후생 감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면 이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쟁당국이 MS와 노키아의 합병안에 대해 아주 치밀하게 심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