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시론

북한의 평화공세와 통일 대박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새해 벽두부터 북한이 평화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 간의 관계개선 분위기 조성을 주장하더니 연일 ‘상호 비방·중상 중단’을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제의를 일축했다.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과연 북한이 남북관계의 중장기 발전에 관심이 있는지 말이다. 사실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는 남북관계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출발점이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적당히 타협하거나,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 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제의에 냉담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대북정책이 단순히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넘어서 통일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남북관계가 외형상 다소 진전된다 하더라도 핵 문제와 같이 결정적 장애물이 그대로 있다면 진정한 진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로 채택했다. 통일이 국정 기조에 포함된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인 통일시대 기반 구축을 언급했다. “통일은 대박이다”는 한마디로 통일 담론을 주도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첫째, 통일이라는 비전과 목표는 대북정책의 나아갈 길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헌법정신이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내포된 국민적 합의다. 통일 대박론은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로 주춤했던 통일의 의지를 깨우려는 것이다.

 둘째, 통일시대 기반 구축은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외교안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박 대통령은 평화정착, 대북 인도적 지원, 그리고 국제적 공감대의 확산 등 세 분야의 구체적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대북정책의 현실성을 높이려 했다.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시하면서, 인도적 지원 확대와 남북의 사회·문화 교류를 통한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노력,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추진 등을 계획하고 있다.

 셋째, 통일 친화적 사회분위기 조성에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분단상태의 서독처럼 통일을 앞세우지 말고 조용히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통일 친화적 사회분위기 조성 노력은 통일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해온 풍조를 정상화시키고, 통일 담론을 둘러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통일이라는 정상에 오르는 길에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과거 난관에 봉착하면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정상이 너무 위험하고 가는 길도 힘드니 정상은 나중에 가고 이번에는 정상 못지않게 좋은 여기서 쉬자고 했다. 또 다른 경우는 정상은 좋지만 문제가 풀릴 때까지 등반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지금 북한의 평화공세는 아무래도 정상을 향해 가는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잘못된 길을 가면 다시 내려오느라 고생만 하고 시간도 낭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의 목표를 분명히 한 만큼 좌절하기보다는 다른 길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비롯해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과제들을 제안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보다 구체적인 전략까지 수립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다. 길이 막히면 우회하고 우회로도 없으면 길을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통일 지향형 대북정책이 과연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는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