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불편하다고? 새 주소가 백배 편해 … 습관이 문제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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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도로명 주소는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비서실 소속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에서 시작한 후 올해 전면 시행까지 수많은 손길을 거쳤다. 누구 한 사람 작품이라고 꼬집기 어려웠다. 그래도 ‘저작권’을 주장할 만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만난 사람이 박헌주 아주대 겸임교수와 강창일 의원(민주당)이다. 박 교수는 96년 도로명 주소 도입을 주장해 초안(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방안)을 만들고 지금까지 안전행정부·서울시 등의 도로명 주소 자문·심의위원을 하고 있다. 또 강 의원은 도로명 주소를 법정주소로 사용하도록 ‘도로명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안(현 도로명주소법)’을 대표 발의했다. 자, 이제 이들은 왜 도로명 주소를 주장했으며, 또 최근의 혼선과 불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자.

“네비(네비게이션)에 R아파트 찍고 오세요. 나 사는 아파트는 여기 딱 하나밖에 안 나오니까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처음 찾아오는 사람한테는 보통 이런 식으로 집 주소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이상했다. 집주소를 알려준 사람이 도로명 주소 기본 틀을 만든 박헌주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였기 때문이다. 1996년 청와대비서실 소속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에 참여해 새 도로명 주소 체계를 잡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도 안전행정부와 서울시의 도로명주소 자문위원인 그조차 도로명 주소를 쓰지 않는다니…. 왠지 속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것부터 물었다. 당신은 왜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의아했다. 도로명 주소로 위치를 설명할 거라 생각했다.

 “처음엔 도로명 주소로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 다들 ‘그거 말고요’ 이런다. 몰라서도 안 쓰고, 알아서도 안 쓰고…. 하여간 쓰질 않으니 할 수 있나. 게다가 차량 네비게이션이나 인터넷 지도에 보면 우리 아파트 이름이 특이해서 찾기 쉽기도 하다.”

강창일 의원(왼쪽)과 박헌주 교수

-박 교수가 96년에 도로명 주소 기틀을 잡을 때와 달리 지금은 누구나 네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이 있어서 쉽게 목적지를 찾는다. 다들 도로명 주소로 바뀌어서 더 불편해졌다고 불만이다.

 “네비게이션은 목적지가 속한 필지에 중심점을 찍고 찾아가는 방식이다. 정확한 출입구를 찾아주진 못한다. 큰 아파트면 모르겠지만 골목길 많고 집이 붙어 있으면 정확하게 찾지 못해 차 타고 빙빙 돈 경험, 다들 있을 거다. 네비게이션은 복잡한 지번 주소를 쉽게 찾아주는 IT기술일 뿐이지 결코 국가의 기본 시스템이 아니다. 기술 발달과 별도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새 주소 체계를 처음 논의했던 1990년대 후반에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이 발달했다면 지오(geo)코딩 방식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지오코딩 방식이란 게 뭔가.

 “96년 새 주소 체계를 연구할 때 3가지 방식을 놓고 고민했다. 하나가 지금의 도로명 주소, 그리고 나머지 두 개가 지오코딩과 지번주소 개선이다. 지번주소 개선 방식이란 동(洞) 체계는 그대로 남기고 뒤죽박죽 붙은 지번만 순서대로 새롭게 매기는 것이다. 지오코딩은 말 그대로 지리 숫자라는 의미다. 서울시는 1번, 부산은 2번, 경기도는 8번처럼 시·구·동 등에 고유번호를 매겨 주소를 모두 숫자로 만드는 방식이다. 도로명주소가 대부분 나라에서 이용하고 있는 데다 가장 찾기 쉬워 채택했다.”

-사람들은 결코 찾기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번주소와 다를 게 없다거나, 심지어는 더 복잡하다고까지 말한다.

 “개개인 모두 이름이 다르다. 사람이 있으면 이름을 정해야 하지 않나. 길도 마찬가지다. 기존 지번주소로는 집 찾기 힘들어서 길마다 새로 이름을 붙인 거다. 이젠 (길)이름만 찾아 가면 된다. 지번주소 보다 백번 편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을까.

 “아직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줄곧 우측 운행하다 영국·일본처럼 좌측 운행을 하면 얼마나 불편하겠나. 습관 때문이다. 변화 자체를 불편해 하는 게 사람 본능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좋은 방식이 있는데 바꾸지 말아야 하나. 도로명 주소 체계를 처음 도입하려 했을 때 함께 작업했던 공무원이 ‘그걸 꼭 해야 되겠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쭉 설명해 줬더니 그 공무원이 앞장서서 ‘이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정책’이라며 적극적으로 추진하더라. 아까 네비게이션 얘기를 했는데 아직 네비게이션 안 쓰는 사람이 태반이다. 우리나라는 지도가 있어도 못 찾는다. 지도에 지번까진 표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거 한번 봐라(※박 교수는 도로명이 표기된 시애틀 관광지도 한 장을 폈다). 해외는 다 이렇게 도로명이 표기돼 있다. 이거 한 장만 있으면 처음 가는 사람도 다 찾을 수 있다. 반면 국내는 다르다. 96년에 조사해보니 용산3가 40번지 내에 3000개 주소가 있더라. 그 지역 우체부에게 ‘이걸 어떻게 찾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사람도 번지로는 못 찾는다는 거다. 그냥 자신만의 표시를 해둔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인수인계만 적어도 일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린다고 하더라.”

-정부는 원래 2012년 전면 시행하려다 2년 유예했다. 그 기간 동안에도 사람들이 도로명 주소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건 지번주소에 만족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만족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서 불만(불편함)이 없는 거지. 내 생각은 이렇다. 뒤에 차가 있든 말든 차 세워 놓고 툭 하면 묻는다. 내 목적을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 아닌가.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혼자 길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단 얘기다. 난 2012년 당시에도 강제(전면)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병행 사용은 아무리 오래 해봐야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 도로명 주소 역시 혼란스러워한다. <江南通新 22일자 6면 참고>

 “아무한테나 물어보면 알려주는데 골치 아프게 왜 새로운 걸 공부해야 되느냐는 얘기다. 나이든 사람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거 잘 안 배운다. 없어도 잘 지내니까. 도로명 주소도 마찬가지다. 기존 주소로도 찾아지니깐 그냥 쓰는 거다.”

-도로명 주소가 되면서 동 이름이 사라졌다.

 “나는 처음부터 동(洞) 체계 필요없다고 봤다. 구(區)도 필요없다.”

-동 이름에 담긴 고유한 역사성도 같이 사라진 거 아닌가.

 “도로명 정하는데 첫째 기본 원칙이 향토 역사성이다. 예전 동보다 오히려 이런 걸 더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동은 큰 면적에 대한 대표성을 띠지만 이제 길이름으로 더 좁게 표시가 되지 않나. 역사성 운운 주장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도로명 부여 원칙 공부도 안 한 사람들 주장이다.”

-어쨌든 도로명 주소 때문에 시끄럽다. 처음 도로명 주소 체계를 세울 때 이런 혼란을 예상했나.

 “충분히 예상했다. 그래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 결재 때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시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도록 홍보 대책을 강구하되 어느정도 혼란은 감수한다고 말이다. 대통령 결재 사항에 명시했다.”

-당시 계획안은 얼마만에 만들었나.

 “96년 초부터 준비했으니 6개월 걸렸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7월 5일에 발표했는데 당일 방송 3사와 다음날 전 신문에 1면 톱으로 나갔다(※박 교수는 1996년 7월 6일자 중앙일보 1면 ‘찾기 쉬운 住所체계 도입’ 기사 등 기사 복사본을 꺼내 보여줬다).”

-그런데 전면 시행까지 17년도 더 걸렸다.

 “ 긴 시간이다. 그 동안 준비하고 홍보해온 거다.”

박 교수가 1996년 만든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방안’ (가운데)초안과 당시 중앙일보 1면에 실린 관련 기사. 그리고 내무부 ‘도로명 및 건물번호부여 원칙안’(97년).

-박 교수가 처음 제안했던 체계와 현재 시행 체계가 똑같은가.

 “한 가지만 바뀌었다. 당초 안은 골목길을 포함해 모든 길마다 고유 도로명을 붙이는 거였다. 그런데 시범사업을 해보니 이렇게 많은 도로명을 왜 만들었냐는 얘기부터 나오는 거다. 찾아보니 대만 골목길은 큰길 이름에 숫자를 붙여 표시하더라. 그래서 우리도 골목길에 숫자를 붙이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때 이런 방식으로 시범 도입했던 지역이 강남구다. 그런데 내무부(현 안전행정부)에서 보니깐 (도입한 체계가) 좀 이상해 자문회의를 소집했다.”

-강남구 체계만 다른 건가.

 “골목길 도로명을 부여한 방법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당시 강남구는 큰 도로와 접한 길 왼편은 1·3·5·7길 같이 홀수 순서대로, 오른편은 2·4·6·8길 같이 짝수 순서대로 이름을 정했다(일련번호 방식). 나는 반대했다. 도시는 계속 바뀐다. 만약 나중에라도 길과 길 사이에 또 다른 길이 생기면 어떻게 표기할 건가. 난 도로마다 20m 간격으로 매겨져 있는 ‘기초번호’로 길 이름을 붙이자고 했다. 이 번호는 건물번호로도 쓰인다. 만약 도로가 생기면 그 자리 기초번호를 따 ‘기초번호+길’이라고 하면 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 원칙으로 정해졌다.”

-그래서 강남구는 어떻게 했나.

 “계속 고집을 부리고 있다. 전국에서 강남구만 유일하게 도로명 골목길 번호 체계가 다르다. 내 기억으론 서초구도 강남구와 함께 이 사업을 한 거 같은데 지금은 고쳤는지 모르겠다. 강남구는 지금도 그렇더라. 예산도 이미 들어갔고, 우린 이게 편하다는 입장이다. 도로명 주소 체계를 알고 있는 다른 지역 사람이 강남구에 가면 어쩌나. 강남구가 불편해서 결국 나중에 손들게 돼 있다. 어차피 욕 먹고 고칠 거다. 기초번호(건물번호)로 길 이름 정해야 한다. 그게 원칙에 맞는 거다(※안행부는 서울은 일련번호 방식, 경기도는 기초번호 방식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도로명 주소는 어떻게 될 거 같나.

 “정착할 수밖에 없다. 시간 문제다. 지난달 자문회의 때도 그렇게 말했다. 정부는 홍보를 계속하고 지하철 노선도 같은 도로명 주소 지도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해야 한다. 제작 비용은 민간업체 광고로 충당하면 될 거다. 사람마다 다 갖고 있고, 차나 집에도 있을 정도여야 한다. 지도는 도로명 주소 체계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도로명 주소에 대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뭔가.

 “89년 스웨덴 스톡홀롬대학원으로 유학 갔었다. 교포들이 한국 사람이 유학왔다고 집으로 초청을 하면서 달랑 무슨 주소만 알려주는 거다. 그걸로 찾아오라고 하더라. 황당했다. ‘어떻게 찾습니까’ 했더니 전화번호부 뒷편에 나와있는 도로명 주소 지도 보고 길 이름만 찾으면 된다고 하더라. 국내로 따지면 서울 중심에서 수원 가는 거리였다. 1시간 반쯤 차 몰고 갔는데 길 이름만 딱딱 보고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그 집 대문에 차를 딱 세웠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

-굉장히 놀랐나 보다.

 “놀란 정도가 아니라 충격이었다.”

도로명 주소 발의한 강창일 국회의원
“새 주소 필요하지만
탁상행정 탓 엉뚱한 이름 붙어”

“거꾸로 물어보자. 도로명 주소를 쓰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

 강창일 의원(민주·제주갑)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도로명 주소를 왜 써야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즉답이었다. 강 의원은 2005년 ‘도로명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안(현 도로명주소법)’을 대표 발의했다. 도로명 주소를 법정주소로 사용하는 법적 토대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왜 써야하느냐”는 질문은 듣기 거북했을 거다. 그러나 계속 물었다. 도로명 주소 시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도로명 주소로 개별 동(洞)의 역사성을 띤 이름이 사라져 불만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역사·전통·문화를 담아 도로명을 만들어야 한다. 제멋대로 붙여 버렸으니 이런 불만이 나오는 거다. 관료들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이런 사례는 많다. 제주도 우리 집 주소가 과원북2길로 바뀌었더라. 그 동네서 10여 년 산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더라. 도시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시골로 갈수록 더 심하다. 죄다 이상한 이름을 붙여 버렸다. 공무원들이 미리 마을 주민과 충분히 논의했어야 했다.”

-이 뿐 아니다. 바뀐 도로명 주소 때문에 곳곳에서 혼란을 겪는다는 걸 알고 있나.

 “정부에서 도로명 주소 체계에 대해 충분히 홍보를 안 했다. 이게 가장 문제다. 입법 발의 후 8년 동안 대체 뭐를 했나. 사람들이 자기집 도로명 주소도 아직 모른다.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국민에게 충분히 알렸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이제부터 관(官)이 주민과 협의해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도 도로명 주소 도입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기존 지번 주소는 일제 침략 후 토지조사사업 할 때 만들어진 체계다. 세금 수탈을 위한 수단이었다. 식민지 유산은 청산해야 하지 않나. 일제 때 만든 걸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이 할 필요가 있나. 당시 부족한 측량 기술 때문에 지적(토지에 구획을 정해 지번을 매기는 일)이 정확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소유권 문제로 형제·동네 주민 간에 소송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도 도로명 체계를 쓴다. 일본도 지난 1962년에 도로와 건물 중심인 블록(구역)형 방식을 시작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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