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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데이터로 본 강남] 기구한 대치동 … 1980년에 옛 이름 겨우 되찾았는데 다시 역사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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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면서 지명(地名)에 대한 관심이 되레 높아졌다. 친숙한 동명(洞名)이 없어져 허전함을 느끼는 이도 많다. 동 이름에 애착을 갖는 건 그 동네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3구의 동 이름은 대부분 조선 후기 혹은 일제시대이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부터 줄곧 쓰여 왔다. 1963년 서울시가 확장할 때 새 이름을 얻은 곳도 더러 있다.

 청담동이 바로 조선 때부터 쓰여온 대표적인 이름이다. 『서울지명사전』과 『2013 강남구 구정 백서』에선 맑은 못이 있고 한강변 물도 맑아 청숫골이라 불렸다고 소개한다. 14년 이후엔 청담리, 63년부턴 줄곧 청담동으로 불렸다. 논현동은 논이 많아 논고개라 불린 것이, 역삼동은 역촌 세 마을을 합친 것이, 매봉산 자락이던 도곡동은 돌이 많아 독구리·독골로 불리던 게 동명 유래다.

 대치동은 조선 때부터 한티, 또는 대치(大峙)로 불렸다. 큰 고개가 있어서다. 광주군 언주면 대치리가 75년 삼성동으로 통합되는 바람에 잠시 이름을 잃기도 했다. 그러다 80년 삼성동에서 분리돼 이름을 되찾았다.

 삼성동은 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름을 얻은 경우다. 봉은사·무동도·닥점 세 마을을 합쳐 삼성리(三成里)가 됐다. 신사동도 같은 해 신촌(새말)과 사평리(沙平里) 일대를 합치며 두 마을의 첫글자를 따 지은 이름이다.

 잠원동의 조선 당시 이름은 잠실리(蠶室里)다. 잠실과 마찬가지로 국립 양잠소가 있었던 때문이다. 『서초 2013 구정기본현황』에 따르면 잠원동은 63년 서울로 편입됐다. 그런데 왜 잠실이란 이름을 못 가졌을까. 현재 잠실이 잠원보다 앞서 49년 서울에 먼저 포함됐기 때문이다. 결국 잠실리와 인근 신원리 글자를 따 잠원동으로 불리게 됐다.

 개포동도 유사한 내력이 있다. 원래 이곳은 광주군 언주면 반포리였다. 63년 서울에 편입되면서 기존 반포동과 중복되자 이름을 개포동으로 바꿨다.

 송파구의 동 이름도 유서가 깊다. 잠실동은 국립 양잠소가 있던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 행정구역이 경기도 양주→서울 성동구(49년)→강남구(75년)→강동구(79년)→송파구(88년)로 수차례 바뀌었지만 이름은 지켜냈다. 일부는 새해 들어 잠실로로 이름을 유지했지만 기존 잠실동 대부분은 올림픽로·도곡로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번 도로명 주소 시행으로 새로 붙은 이름은 대부분 행정구역에서 따왔지만 역사나 지형적 특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곳도 있다. 강남구 광평로는 인근 광평대군 묘역을, 송파구 충민로는 근처에서 태어난 임경업 장군 시호를 딴 것이다. 보은(報恩)을 한 곳도 있다. 서초구 주흥길이다. 옛적 큰 홍수가 났을 때 김주흥이란 이가 이웃에 도움을 베푼 것을 기렸다고 한다.

 우리말로 바꾼 경우도 있다. 풍납동(風洞)은 우리말 바람드리길로, 강남구 율현동은 밤고개로로 바뀌었다. 마을 형상이 농기구 고무래를 닮은 데서 착안한 서초구 고무래로도 있다.

 동 이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등기부등본·토지대장 등 공문서엔 기존 지번 주소가 남아 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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