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사병의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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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월도 저물어 가는 30일 심야, 만취사병이 「카빈」을 난사하여 소대장 등 동료군인 6명과 민간인일가3명을 사살하였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사건은 얼른 보기에 당돌하고 우발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고사병은 이날 근무시간중인 대낮부터 부대앞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점, 그 자리에서 이미 같이 술을 마시던 동료군인과 대검을 뽑아들고 싸움을 벌였다는 점, 그러다가 막사에 들어가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 동기가 평소사이가 나빴던 선임하사에 대한 앙심에서였다는 점등이 보도되고 있음을 불 때, 이 사건은 단순한 우발사고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 면이 있다.
사고를 저지른 끝에 자살한 김1병이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총을 난사할 때까지는 무려 10시간 내외의 시간이 경과하였을 것이 예상된다. 그동안에 근무시간중의 현역사병이 술에 취해서 싸움을 하고 부대막사를 들락날락하여도 이를 다스리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민간인 사회에서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거늘, 하물며 철통같은 군기를 생명으로 하는 군대사회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과 같이, 한 사병의 만취상태가 전체군인의 명성에 먹칠을 한 셈이다. 우리는 그것을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부동의 것이며 부동의 것이라야 한다. 어려운 생계 속에서 이미 기억원을 갹출하고 있는 방위성금 속에 바로 그러한 국민의 신뢰와 기대가 표백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군은 군 전체의 위신을 위해서 어떠한 부분적인 사고도 그 책임소재를 철저히 규명해야한다. 더우기 김 일병의 경우와 유사한 사고가 처음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경고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71년에 김포에서 군민6명을 사살한 공 하사 사건을 비롯하여 지난해 한해만도 탈영병의 고속도로질주살인사건, 실연사병의 「카빈」난사 사건 등이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에는 악몽으로 기억되고있다.
이 기회에 모름지기 군은 사고가 있을 때마다 지적되고 있는 총기관리에 소홀이 없는가를 재점검하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총기관리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문제사병에 대한「인간관리」라고 할 수 있다.
병사 안의 원만치 못한 인간관계나 엄정한 군률, 폐쇄적인 금욕생활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사병들의 정신적·심리적인 지도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러한 조직생활이 낳은 인간관계의 건전한 관리가 사고방지에 선행되어야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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