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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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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야당 당수의 장례가 「당장」으로 거행될 것이라고 한다. 고인의 뜻은 헤아릴 길 없으나 후인들의 그런 결단은 잘 한 일 같다. 소박하고 겸허한 마지막 항로는 도리어 고인의 음덕을 돋보이게 할지도 모른다.
지난날엔 후인들의 공연한 과례로 명부의 고인을 욕되게 한일이 없지 않았다. 번거로운 장례 행렬을 보고도 옷깃을 여미는 행인이 없다면 그럴 수 없이 불행한 일이다. 죽음은 엄숙한 현실이거늘 그런 마음을 흐트리는 의절은 실로 무의미하다.
명분 없는 사회장·공명 없는 국민장은 어떤 고인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명부로 가는 고인의 발걸음만 무겁게 만들 것 같다. 후인들은 다만 세속적인 이해나 하찮은 행적을 과장하기 위해 의식을 번거롭게 꾸미는 비례는 삼가는 것이 좋다.
가까운 기억으로는 최근에 작고한 「프랑스」 대통령 「퐁피두」의 장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는 현직의 국가 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촐한 가족장으로 의식을 대신했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내외 의의 전적인 예우를 생각해서 「프랑스」 정부는 별도로 추모식을 거행했었다. 우리 사회라면 고인의 「유명세」만으로 국민장, 혹은 사회장과 함께 국립 묘지의 한가운데를 묘역으로 차지하는 예가 드물지 않다.
형식과 절차보다는 따뜻한 인정과 한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존중하려는 사고 방식은 어딘지 우러러보게 된다. 그야말로 관 뚜껑을 덮은 다음의 인간적 평가는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역시 「드골」도 그랬다. 그는 「유럽」 현대사의 주인공이 될 만큼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드골」의 장례식은 유언에 따라 향리인 「콜롱베·레·되제글리즈」의 조그만 성당에서 거행됐다. 그곳은 수도 「파리」에서 2백50여km나 떨어진 시골이었다. 「파리」의 관가를 누비는 장례 행렬도 없었다. 그렇다고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판테옹」에 묻힌 것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 원해서 인간적인 최후를 맞고 또 보냈다고 「프랑스」의 정치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의 「트루먼」 전 대통령도 역시 고향에서 마치 촌부처럼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장례도 가족과 가까운 지기들만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지냈다. 이들은 어느 한사람도 생전의 공헌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모두 그 사회와 국가를 위해 사심 없이 기여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본인들의 유지에 따라 후인들은 굳이 과례의 의식을 베풀지 않았다. 한 자연인으로, 선량한 타인에게 물심의 부담을 주지 않고 조용하고 소박하게 마지막 길을 걸어갔다.
지금 우리의 한 원로 정객도 조촐한 장례식과 함께 향리에 묻히게 되었다. 그것은 국민장이나 국립 묘지보다 더 엄숙하고 돋보이게 될 것이다. 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행적으로도 훌륭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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