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다시 선 무대, 낯설지만 재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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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복귀를 앞둔 배우 추상미. 연극 ‘은밀한 기쁨’에서 주인공 이사벨 역을 맡았다. 그는 “전통적인 가치, 선한 가치를 추구하고 의존한다는 면에서 나와 닮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어요. 절대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찾는 존재가 있다는 데서 내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죠. 가족이 내 에너지와 열정의 자양분이 됩니다.”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추상미(41). 엄마가 돼 돌아온 그의 눈에선 이전보다 더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25개월 된 아들을 떼어놓고 하는 연기인 만큼 더 열심히 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의 복귀작은 다음달 7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되는 ‘은밀한 기쁨’(데이빗 해어 원작, 김광보 연출)이다. 2009년 연극 ‘가을소나타’ 이후 첫 무대. 22일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살짝 낯설지만 재미있다”고 말했다.

 꽤 긴 공백기 동안 그는 공부를 했고, 또 영화도 만들었다. 2010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오래된 꿈”을 향한 첫 발이었다. 졸업을 하기 위해선 영화 세 편을 만들어야 했다. 단편영화 ‘분장실’과 ‘영향 아래의 여자’ 감독으로 그가 이름을 올리게 된 연유다. 두 작품은 각각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지금은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그에 앞서 지난 5년간 그가 무엇보다 가장 몰두한 일은 출산과 육아였다. 2011년 12월 태어난 아들 지명이는 그에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그는 “걷고 말하는, 누구나 다 지나온 성장 과정 하나하나에서 놀랍고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또 “예전엔 내 개인적인 명성·명예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젠 내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가장 크다”고 했다.

 당초 아이가 세 돌이 될 때까지는 옆에 붙어 키우려고 했단다. “세 살까지 형성된 정서가 평생을 간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의 복귀는 계획보다 앞당겨졌다. ‘은밀한 기쁨’의 대본을 받고 “어렵지만 배울 게 많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해 헛된 희망을 갖지 않고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란 점이 그를 끌어당겼다.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남편(배우 이석준)의 영향도 있었다. “최근 남편이 출연하는 연극 ‘스테디레인’을 보고 자극과 도전을 받았다. ‘정말 좋은 배우가 됐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나도 따라가아겠다는 긴장감이 생겼다”고 했다.

 5년 만에 돌아온 연극계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전보다 관객도 줄고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특별한 위기 상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연극은 절대 상업적인 장르가 될 수 없는 기초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중학생 때 돌아가신 아버지(추송웅·1941∼85)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예술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로 조명 시설도 제대로 안 돼 있는 지방 대학 강당을 다니며 공연을 했어요. 연극은 상업적인 목적과 상관없이 탐구하고 몰두하는 순수예술이죠. 자본주의 논리에서 연극이 생존하려면 정부 차원의 기초예술 보호 정책이 꼭 필요합니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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