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재하는 「급행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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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스피드·머니」, 즉 「급행료」란 말은 참으로「아이러니컬」한 말이다.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대다수 개발도상국가에 있어서의 행정의 부패상을 들추어내고 있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행정의 능률화를 보장해 주는 말처럼 되고 있으니 말이다. 본래,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이렇게 당연한 것처럼 공공연하게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다른 한편으론 「급행료」란 말은「시니컬」(조소적)한 말이기도 하다.
상·하급 관청의 창구에서 이미 당연한 것처럼 그것을 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이 급행료가 기차의 급행 표에 대해서 지불하는 그것처럼 떳떳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이 떳떳하지 못한 짓을「급행료」란 말로 얼버무리고 있는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에 대한, 관청에 대한, 그리고 국가에 대한 자조적인 체념이 깔려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불쾌하기 이를데 없는 이른바 「엽전」의 자조의식, 또는 자비의식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급행료」란 말은 우리 나라를 포함한 대다수 저개발 국가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서민적인, 너무나도 서민적인 일상용어가 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비싼 휘발유의 관용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리들은 왜 가난한 서민들이 그 비싼 급행료를 지불해야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급행료가 붙지 않고선 종이 한 장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관청창구 앞에서의 서민의 일상이 되고 있다.
「급행료」를 이처럼「아이러니컬」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또는 「시니컬」하게 자조적인 웃음으로, 또는 이미 널리 일상화되어 버렸기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서민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해서 이를 대수롭지 않게 보아서는 아니 된다.
「급행료」의 존재는 단적으로 말해서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식을 분열시키는 원천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모든 서민이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언제나 국가를 의식하고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오다가다 무슨무슨 식이나 무슨무슨 대회에서 「국기에 대한 선서」를 할 때 일반 국민들은 국가의 존재를 의식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다가다 무슨무슨 민원서류를 떼러 관청의 창구에 가서 일반 서민들은 국가생활을 의식한다. 국기에 대한 선서를 하면서 사람들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바람을 다짐한다. 고양된 국가의식으로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러다가 관청창구에서 급행료를 지불할 때는 조국에 대한 수치심과 열등감과 저주심에 젖는다. 대한민국이 「엽전」·「짚신」으로 폄하된다. 불행한 일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위정자들이 이「급행료」를 없애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행료」는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다. 급행료를 없애겠다는 약속이 번복되는 것만큼 국민들의 경부에 대한 신뢰는 저하되고 있다.
없는 자원, 약한 국력으로써도 능히 중화학공업 건설을 이룩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우리 처지이다. 절대로 없지 않은 「리더쉽」, 절대로 약하다고 볼 수 없는 행정력을 가지고 「급행료」하나도 없애지 못한다면야 그것이야말로 정말 「아이러니컬」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모처럼 암행반을 출동시켜「급행료」의 건재를 확인하고 발표한 바 있는 정부 당국은 이번에야말로 급행료를 뿌리째 없애 버리는데 「리더십」과 행정력을 발휘해 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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