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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토킹 영어수업 싫었던 외고생 어려운 환경 딛고 서울대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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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외고에서 가장 싫어하는 수업이 영어 시간이었어요.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은 프리토킹에 문제가 없었거든요. 국어 수업이 제일 좋았어요. 한국에서 살았다면 다 비슷비슷한 수준일 테니까. 그래서 수능 국어 성적이 제일 좋았네요.” 올해 서울대에 입학하는 김소연(19·사진)양이 떠올리는 고등학교 수업 풍경이다.

 중학교 때 성적이 전교 1, 2등 안에 들었던 김양은 자연스레 외고 진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비싼 학비와 기숙사비가 걸림돌이었다. 김양은 8세 때 아버지와 떨어져 어머니·오빠·여동생과 살았다. 김양 가족의 수입은 국가 지원금 몇만원과 병원에서 사무 보조를 보는 어머니가 벌어오는 월급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김양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머니는 빠듯한 월급을 쪼개 경기도의 한 외고에 입학한 김양을 뒷바라지했다. 3년 동안 매월 60만원이 넘는 기숙사비와 식비를 댔다.

그는 “어머니가 먹을 것, 입을 것은 안 사주셔도 책은 꼬박꼬박 사주셨다”고 떠올렸다. 전남의 조그마한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양의 어머니도 어렸을 땐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공부를 원하는 만큼 못 마치셨기 때문에 저한테는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김양에게 외고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주변엔 의사·변호사 부모를 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럴수록 공부를 더 잘하고 싶었다. 그는 “힘들 땐 입시에 성공한 미래를 떠올리면서 공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잠이 쏟아질 때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지난달 서울대 사회과학계열 수시모집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대학에 들어가면 사회과학 전공을 두루 탐색해서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고 싶다.

 김양의 대학생활은 아무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집안 형편상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틈틈이 자신보다 좀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김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프로그램을 통해 월 3만원씩 후원을 받아왔다. 그는 “8년 전에 저에게 도움 주신 분이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분이었다”며 “성공하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돕기보다 그 전에라도 조금씩 베풀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말했다. 김양은 “대학생이 되면 학점이나 스펙 경쟁이 더 치열할 것 같다”고 걱정 하면서도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믿어 보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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