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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민정치」-워싱턴정가의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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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의 3월말 날씨는 쌀쌀한데도 거리에는 자목련을 비롯하여 벚꽃들이 한창 피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미국 학생들은 스트리킹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신문에는 한 줄도 안 나고 구경할 수는 더욱 없다.
과거의 과열했던 학생들의 정치참여가 이제는 실속있는 실천행동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정치혁신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신문에는 독자들의 정치관계 투고가 단연 많고 사설도 정치일색인 것처럼 보인다.
신문에는 전 미국 보건교육복지장관이었던 가드너씨가 회장으로 있는 코먼·코스(Common Cause)의 74년의 중간선거를 위하여 1천4백20만불의 거액이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선거비용으로 헌금되었다는 정치헌금조사 기사가 크게 보도되었다.
정보기관도 아닌 일개 사설단체가 의회의원 개개인의 정치헌금액을 조사하고 또 이를 공개하여 선거정화를 위하여 획기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관료들이 부패할 수 없는 방부제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민간 사정기관으로서의 역할까지도 다하는 것으로 미국의 민주정치를 지탱하는 한 지주를 이루고있다고 하겠다. 나는 하도 신기한 생각이 들어 코먼·코스를 찾아갔다.
마침 창설자격인 가드너 박사가 없어서 위원장을 만나서 내용을 알아보았다. 31만7천2백46명의 회원을 가진 코먼·코스는 초 정당적인 단체로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지부를 두고있다.
이 단체가 창설된지 3년만에 회비를 내는 회원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사실은 이 조직이 얼마나 성공적인 것인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 조직의 회비는 연간 15달러다. 연간예산은 6백만 달러로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중앙당부보다도 더 많은 예산을 집행하고있다.
이 기구에서는 의회의 42개 위원회의 활동, 회의 등을 모니터하여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는 무서운 존재로 인정되고 있는 것 같다.
국회에서도 이 조직이 지나치게 의원개개인의 정치활동을 모니터하여 선거인을 통해 압력을 가하고있다고 하여 비판하는 소리가 높으나 어떠한 기관도 이 기구를 적으로 돌리지 못하는 것은 초당파적인 이 기구가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드너씨만 하더라도 민주당 당원이었지만 공화당 못지 않게 민주당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단체의 또 하나의 특색은 이 기구는 결코 자기들의 한일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기구는 다른 민간기구와 협동하여 캠페인을 벌이되 다른 민간기구만으로써도 성공할 기회가 있으면 코먼·코스는 이 기구에 캠페인을 양보하고 공을 그 기구에 돌려주고 있다는 것.
이것은 이기구가 정치적 야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사 중에는 32만명의 회원을 기반으로 제3당을 조직하자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나 가드너 박사를 비롯한 간부들의 적극 반대로 좌절되었다.
또 닉슨 탄핵운동을 벌일 것인가에 관하여 많은 토론을 했으나 탄핵운동은 다른 기구에 맡기고 의회제도 개혁과 입법·행정공개 제도에 촛점을 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회와 법원·국민들은 탄핵문제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원법사위는 4월30일까지는 탄핵소추 여부를 결정하도록 노력하고있다. 과연 닉슨 대통령의 행위가 탄핵대상으로 될 것인가가 워싱턴의 논란의 초점이 되고있다.
탄핵의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관하여 학계와 정계·언론계의 논쟁은 심각하다. 닉슨 대통령의 행위가 탄핵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거의 공통된 견해인데 대하여 대통령 법률고문은 헌법조항을 문리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성립사와 선례를 들어 경죄로서는 탄핵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하원법사위와 특별검사는 탄핵대상이 되는 중죄의 증거를 포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법률문제는 이미 끝났고 사실관계 확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공화당소속 버클리 의원의 닉슨 사임권고가 닉슨 대통령과의 협의 아래 나온 것이요, 닉슨 후퇴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전략이란 설도 많이 유포되고 있다. 탄핵결정 후의 형사소추를 면하기 위하여 사임으로써 불명예이기는 하나 처벌만은 면하게 하겠다는 생각이 버클리 의원의 심중일 것이라는 것. 공화당으로서는 중간선거에서 참패를 면하기 위하여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고 포드 부통령의 승계를 바라고 있는 듯 하다.
미국의 행정부는 워터게이트사건과 탈세사건·수회사건 때문에 신뢰를 어느 정도 잃고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약화된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이 누가 되거나 별 상관없이 자기 일을 자기가 하고있는 것이 미국인들의 장점인 것이다.
국회도 당리당략만을 위하여서 탄핵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고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탄핵여부를 결정하려고 하고있는 것 같다.
상당수의 국회의원이 선거구민들에게 탄핵여부를 묻고 있는데 일반적인 경향은 찬반이 반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모든 신문은 탄핵문제에 관하여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독자투고와 사설이 범람하고 있는 느낌이다. 찬반에 대한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미국인의 용기와 참여정신·부정과 부패를 끝까지 파헤치는 미국의 신문―이 두 요소가 미국의 민주정치를 개화케 하는 기조라고 하겠다.
공개행정·공개입법 등 모든 사물에 대한 공개에의 욕구가 점점 높아져가고 이를 보장하기 위하여 언론인의 신분보장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미 국회는 언론인의 증언거부권을 인정하는 법안을 심의중인데 형사절차에서 필수 불가결한 경우를 제의하고는 언론인의 증언거부권을 인정하는 법률이 통과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미국은 보다 좋은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진통을 겪고 있으며 이 홍역은 곧 면역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철수<서울대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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