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휴머니즘과 테러의 공존 … 20세기 민낯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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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세기』에서 20세기를 지배한 열정은 이데올로기를 향한 열정도 메시아적 열정도 아닌, ‘실재를 향한 열정’ 이었다고 말한다. 바디우에게 실재란 현실의 지배적인 질서 바깥에 있는 것, 기존의 체계에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중앙포토]

세기
알랭 바디우 지음
박정태 옮김, 이학사
324쪽, 1만8000원

20세기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까.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라고 했다. 전쟁과 번영의 대립에 주목했다.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았던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77)도 이 책에서 20세기 정치와 예술, 운동, 성 등의 영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을 하나로 묶어주는 게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그리고 말한다. 그것은 ‘실재를 향한 열정’이었다고….

 바디우가 건드리는 영역은 폭넓다. 또 논쟁적이다. 일례로 폭력과 억압의 대명사인 파시즘을 보자. 바디우에 따르면 파시스트에게 전쟁이란 세계를 ‘정화’하려는 것이었다. 스탈린의 거대한 숙청도, 그 재판에서 짓지 않은 죄를 시인했던 이들도, 그 숙청을 진정한 공산주의적 인간을 위한 ‘정화’ 과정으로 믿었다고 한다.

 인간을 수용소에 가두어 놓고 죽이거나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나 인종주의적 조치들 또한 좀 더 우월한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는 ‘열정’과 결부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 열정의 끝에 참혹한 비극만 남았지만 말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문화·규범 등에 의해 억압돼 있던, 현실 저편의 성적인 충동과 에너지를 향한 열정의 산물이었다. 기존의 예술이나 미, 작품의 관념을 깨뜨리며 매번 새로운 예술의 창조를 선언한 아방가르드의 시도 또한 모두 현실 속에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치달리던, 실재를 향한 열정에 의해 추동됐다.

 이 열정을 끌어들이는 ‘실재’를 바디우는 ‘금수(禽獸)’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금수 같은’이란 말이 그렇듯이, 금수란 길들여지지 않은 강력한 힘을 갖는데, 그렇기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고, 따라서 가급적 피해야 할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유능한 사냥꾼을 매혹하는 것은 바로 저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실재적 힘이다. 그 매혹은 종종 목숨마저 걸게 한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누구나 잡을 수 있는 만만한 동물만을 상대하는 것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일 아닌가. 그렇기에 실재를 향한 그 열정은 ‘진리를 향한 모험’이라고 그저 상찬할 순 없지만, ‘야만’이란 말로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휴머니즘과 테러’라는 정반대되는 것의 결합, 바디우가 제시하는 20세기의 얼굴이다.

 사실 『세기』는 쉽지 않은 책이다. 무엇보다 바디우가 쓰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 이 글 앞부분의 ‘사건’이 그렇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은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도래하는 것을 뜻한다. 가령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것이 그렇다. 바디우에겐 아마 프랑스 68년 5월혁명이 그랬을 것이다.

 ‘실재’도 그렇다. 우리가 통상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아주 다른 것이다. 정신분석학(라캉)에서 부르는 ‘실재’ 개념으로, 현실은 대개 지배적인 체계나 질서를 뜻하지만 실재란 현실의 질서 바깥에 있는 것을 뜻한다. ‘사건’과 유사하게 기존의 체계 안에 자리가 없지만, 그렇기에 기존의 체계에 균열과 간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바디우는 이처럼 이미 굳어진 가치와 대결하며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진리’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책 『세기』에서 지난 100년간 펼쳐진 진리를 향한 분투를 종횡으로 꿰고 있다. 지배적 질서와 의견을 거부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모색했던 ‘사건’과 ‘실재’의 궤적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철학은 기성체제에서 금지된 것을 사유해야 한다는 바디우의 지론을 다시금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사건을 하나로 모아서, 그것의 주어의 자리에 ‘세기’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지난 100년간 인간이 살아온 모습을 멋지게 요약해 보여준다. 그런데 역으로 세기가 하나로 묶인 사건들의 주어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은, 이전에 독일철학자 헤겔이 그랬던 것과 유사하게, 100년을 단위로 하는 ‘시대정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슬그머니 반복하는 것 같다. 이는 멋진 요약을 위해 그가 치러야 했던 비용일 것이다. 그의 시각에 동의하든 안 하든,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하고 연구자들의 공동체인 ‘수유너머N’(www.nomadist.org)에서 활동 중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 저서로 『철학과 굴뚝청소부』 『히치하이커의 철학여행』 『삶을 위한 철학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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