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라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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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봄이면 시골에서 아가씨들이 일자리를 찾아 무더기로 서울이 올라온다. 대부분이 20세 미만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냥 서울 간다는 말하지 않는다. 으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골은 내려가는 것이 된다.
부산사람도 서울로 올라간다. 개성사람도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이 언제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기차에서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것을 하행선이라고 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것은 상행선이라고 한다.
그러나「올라간다」는 맡은 기차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흔히 상경한다고 했다. 그러나 상경은 이조시대의 선비들도 썼다.
이때의「경」이란 임금님이 계시는 곳을 뜻했다. 그렇다면 서울로 올라간다는 표현은 매우 전근대적인 것이라 여겨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서울로 올라간다고들 한다. 입버릇 때문에서만은 아니다. 특히 시골 소녀에게 있어서는 서울이란 꿈과 환상의 도시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서울로 올라간다고 말할 만도 하다.
도시란 서구의 중세 때부터 자유와 가능의 터전이기도 했다. 용케 도시에 숨어들어 꼭 1년 기한에서 하루만 넘기면 농노도 자유민이 될 수가 있었다.
맨 주먹으로 도시에 뛰어들어 공명을 올리고 부귀를 누리고 금의환향하는 얘기들은 전혀 거짓도 아니었다. 단순한 시골생활이 따분해져서 서울로 올라오는 소녀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들은 서울을 마냥 즐겁고 멋진 곳으로 꿈 꿨을 게 틀림없다.
이대농촌문제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런 이촌 여성이 19%나 된다.
그러나 젊은 여성이 서울에 올라오는 이유의 대부분은 경제적인데 있다. 집을 떠나겠다는 어린 딸을 63%의 부모가 말리지 않았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식구라고 말한다. 먹는 입이란 뜻이다. 이 말에서는 가족의 애틋한 애정의 유대를 느끼기는 힘들다. 가난한 우리네 역사가 가족의 성원까지를 어느 사이엔가「식구」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가난한 시골 살림에서는 식구가 하나 줄어들면 그만큼 남는 입들에 들어가는 밥술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서울에서는 봄맞이에 들뜨지만, 시골은 이제부터가 춘궁의 허기지는 철이다. 식구하나를 줄이는 셈으로 딸을 서울로 올려 보낼 것이다.
그런 서글픈 심정은 통계도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리 알량한 일터라 해도 역시 서울에만 올라가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
이런 막연한 기대를 안고 떠나는 딸의 착잡한 심정도 사실은 헤아릴 길이 없다.
오늘도 서울로 시골 처녀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미 서울에 올라간 언니들의 절반 이상은 후회하지 않고 있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니들은 젊은 여성의 이촌이 나쁘다고 보고 있다. 악과 자극이 너무 많다고 느낀 때문인지 그것도 통계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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