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제품 가격의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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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스럽게 오르기만 하던 물가 동향에 이상 현상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이중 가격 현상이 뚜렷하던 세탁비누·분유·면사 등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우유를 비롯해서 목재·철근 등 건축 자재 값도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부 제품 가격의 하락이 경기 후퇴를 예시하는 본질적인 동향의 시발점을 뜻하는 것이냐, 아니면 과열된 상품 투기의 단순한 후유증을 뜻하느냐는 아직 속단하기 어려운 것이나 새로운 경제적 국면인 것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작년 말이래 폭등 일로를 걷던 물가가 2월부터 상승세를 둔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상품 투기의 필연적인 후유증 일뿐 본질적인 물상의 안정화를 뜻하는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지금 일부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지나치게 진전된 상품 투기가 일으킨 후유증으로서 상상해야 할 것이다.
원래 투기는 적정 가격 이상으로 가격을 밀어 올리게 하고, 그 때문에 수요가 대폭 줄면 가격의 추가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투기는 투기가 더욱 진전될 수 없는 여건이 생기면 정지되는 것이며 그후부터는 금리만을 밑지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기의 절정에서 상품을 방매하는 것이 투기의 본질인 것이며, 때문에 투기의 진전폭이 크면 클수록 후퇴되는 가격 하락폭도 커지는 것이다.
이러한 투기의 일반 이론은 국내 상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수입 상품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수입 상품 중 국제적인 투기가 크게 진행되었던 석유 화학 제품·원면·우지 등이 크게 떨어지는 이유도 같은 논리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상품 투기가 진정화 된다고 해서 물가 정세가 안정화되리라고 성급히 기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선 우리의 무역의존도가 71·5%에 이르고 있어 투기의 냉각은 수입의 감소와 가동율의 후퇴로 연결되어 일반적인 경기 후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일 경제 규모가 축소되는 경우에는 간접비의 부담 증가로 규모 축소와 가격의 재상승이라는 가장 나쁜 결합 현상이 일어날 여지가 있다.
다음으로 투기가 진정화되는 요인으로서 금융적 측면을 중요시할 필요가 있다. 재정 적자의 누적과 비축 금융의 확대로 운전 자금·투기 대금인 일반 대출은 사실상 일시 중단되고 있다. 그 위에 차관 원리금 상환 압력과 외국인 투자의 과실 송금이 근자 집중됨으로써 외환면에서 통화가 환수되고 있다. 또 결산 법인의 납세와 배당금 때문에 기업 자금은 이중의 핍박 요인 속에 있어 투기가 진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계절적 요인은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일부 가격 하락을 안정화의 전조로 평가해서 금융을 다시 완화한다면 물가 상승세는 다시 크게 악화되는 것이다.
상품 투기의 진정화를 불가피하게한 또 하나의 원인은 수출 수요의 둔화와 그에 따른 투자 열의 냉각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시설은 이미 수출 수요의 계속적인 확대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있으며 그동안 건설 중인 공장들이 하나하나 가동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 증대가 수출 수요의 둔화에 부딪쳐 과잉 시설화 됨에 따라서 신규 투자가 축소되고 그 때문에 경기가 후퇴함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원리적으로 투자율의 후퇴는 경기 후퇴를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므로 투기가 더 진전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의 높은 무역의존도가 물가의 안정화보다는 무역 규모 축소와 가동율 저하를 통한 인플레의 진전으로 연결될 여지를 증대케 하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물가와 경제 규모의 확대가 밀월 하기에는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물가는 일시적으로 진정화되었다고 하고 있지만, 결국 다시 상승해야 할 본질적 약점을 우리 경제 구조는 내포하고 있는 반면, 수출 수요 및 투자 수요의 둔화는 무역 규모의 실질적 축소로 연결되어 본질적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게 할 공산이 짙다.
무역 규모의 축소를 막으려면 환율 문제를 「터치」해야 하나 이 경우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고 투기 비용을 가중시키는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물가는 다시 악순환 과정에 빠질 것이다. 이제 경제 정책은 참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어 세련된 종합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