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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가중케 한 영국총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한 영국의 유권자들은 28일 실시된 하원의원 선거에서 산적한 난제를 수습 할 차기정권의 담당자로서 일단 야당인 노동당에 신승을 안겨주기는 했으나 노동당도 보수당도 의석의 과반수에 미달하여 어쩌면 재선거가 불가피하게 될지도 모른다. 헌법에 있어서도 관습법 적「룰」을 지키고 있는 영국에 있어서는 총선 결과 명확하고 분명한 다수(clear and distinct majority)를 차지한 정당이 없는 경우, 현 집권당수가 계속 정권을 맡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법정임기를 17개월이나 앞두고 돌연히 실시하게된 이번『위기선거』의 직접적인 동기는 작년 말 영국을 파국으로 몰고 갈지도 모르는 탄광노조의 과격한 임금 인상요구와 파업사태, 그에 따른 주요기간산업의 마비 위협과 재정난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도「히드」보수당 정권의 노후증상은 이미 여러 분야에 걸쳐 표면화되기 시작했음을 외면 할 수 없다.
우선 일부 집권층인사의 탈선 적인 사생활이 몰고 온 통치집단의 도덕적 공신력의 실추는 차치 하고서라도 보수당 집권 3년간의 식료품 가격 상승률이 53%에 달했다는 사실은 그 간의 격심한「인플레」와 불황을 여실히 입증해 주는 것이다.
더구나 8억8천만「달러」에 육박한 국제수지의 적자, 2백만 명에 달하는 실업사태, 연간 I5%의 상승률로 치솟는 생계비압박, 그리고 전기·「가스」·석탄·철강 등 국유 산업이 직면한 심각한 재정난이「히드」정권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수명 자체를 위협하는 정세를 조성해 왔던 것이다.
때문에「히드」수상으로서는 설사 탄광노조의 파업이 없었더라도 어차피 이러한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서는『영국을 통치하는 것은 노조과격파냐 정부냐』하는「드·골」식 택일요구로써 국민의 보수체질을 자극하는 것에 의해 정권연장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배수의 진은 허물어져 혁신정당인 노동당의 신승으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영국경제에 무슨 파격적인 사태변화가 온다고는 볼 수 없다. 영국의 노동당 자체가 정책정당이지 세계관정당이나 계급정당이 아닐뿐더러 노조과격파와는 오히려 보수당 못지 않게 적대관계에 있는 만큼 그들이 집권했다 하여 노동정책수행의 유연 화 이상의 변화가 오리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는 누가 집권하든 파업을 속행할 것을 공언하면서 현행「인플레」억제 법에 따라 허용되고 있는 16·5%의 인상폭을 초과하는 광부임금인상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총 선의 교훈은 무엇보다도 보수·노동 양대 당이 다같이 그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추세에 있다고 하겠다. 원외단체인 노조가 과격한 직접행동에 나섰다는 사실자체가 이미 양대 당의 조정능력의 상실을 의미하며, 노조가 노동당을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현존의 양당체제가 현실적인 효용성이나 국민의 생활상의 요구로부터 괴리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의 노 대국이 안고 있는 질병이 단순한 정치공학이나 정책적 대중 요법으로써 근 치 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보다 거대한 문명사적 질환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국사회에 사실상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사회계층간의 갈등 및 북「아일랜드」「카톨릭」교도들에 대한 무장탄압 등 제 사회문제는 노동당의 집권으로도 결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신 정권이 부유층에 대한 중 과세·식료품보조·EC 가맹 조건의 재조정 등 몇 개의 정책을 실천함으로써 당면한 최후의 위기를 일단 해결할 수만 있어도 만행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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