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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사이판 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괌」의 여행을 마치고 몽환의 나라「트루크」섬과「포나페」섬으로 가려고 새벽에 비행장에 나갔다고 여객기는 1주일에 사흘밖에 다니지 않는 데 어제 와서 여행사정을 물었을 때엔 태워줄 듯 했는데 막상 비행기를 타려고 하니 신탁통치를 받고 있는 이 섬들에 가려면 우리 나라 공관의 확인 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날 b-29 폭격기 기타>
마침 영사관이 있어서 얻을 수 있겠으나 외무부여행신청「코트」에는 이 두 섬이 빠져있기 때문에 빨리 될 것 같지 않아 통과만이라도 시켜달라고 했다. 그러나 통과할 수 도 없다고 딱 잡아떼는 바람에, 다음 비행기편이 있을 때까지 헛되이 보낼 수가 없어서 북쪽에 있는「사이판」섬을 우선 찾아가기로 했다.
이「사이판」섬 주변은 지난날 일본이 남양군도란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 섬은 일본의 요새로서 수세로 몰렸을 때 전쟁 사에 드물 만큼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곳이다.
여객기가 「사이판」섬에 가까워졌을 때 내려다보니 섬 둘레의 근해는「새 파이어」빛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미소년「나르시소스」의 얼굴이 비친 호수와도 같이, 바다는 거울이어서 푸르디푸른 하늘이 고스란히 비치기 때문에 이렇듯 짙푸른지도 모른다.
이렇듯 아름다운 바 다가 한때 붉은 피로 물들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바다 빛은 태고적의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니는 듯 무구하고도 순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 지상을 아무리 더럽히더라도 자연의 의지는 정화시켜주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무자비한 전쟁 신이 이 세계를 아무리 생지옥으로 만들더라도 자연은 낙원으로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이판」공항에 여객기가 내릴 때, 하늘에서「에덴」으로 내려오고 있는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이 섬의 자연이 아름다워 보였다. 골 주로는 굉장히 크며 공항「빌딩」은 국제공항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으나「니파」잎으로 엮어만든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 섬이 유명해진 것은 제2차대전 후반기 때의 일이다.
1944년 3월12일 미국의 통합사령부가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장거리폭격기기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온갖 준비를 갖추고 6월11일 새벽 공중공격으로부터 시작했었다. 이 작전은 6월15일이 D「데이」가 되었던 만큼 혈전이 벌어진 곳이다.

<처참했던「만세돌격」>
이 모진 싸움가운데서도 유명한 일본의「반자이·도쓰게끼」(만세돌격) 가 벌어진 격전지를 찾았다. 나의 동족이 피를 흘린 곳이라면 눈물이라도 흐르겠지만, 남의 나라의 일이기 때문에 덜 심각해지는 것일까. 나는 그 옛날의 전쟁 사를 회상해 보았다. 이 섬에 미국이 상륙하자, 남쪽 교두보를 차지했을 때 미군병력은 약6만이고 일본군 병력은 약3만으로서 민간인 1만3천명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한다.
일본군은 최신 무기를 갖춘 미군에 쫓기어 북쪽 산악지대로 몰려들어갔을 때엔 겨우 5천 사람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낭떠러지를 이용하여 마지막으로 동굴작전을 벌였었으며 끝내 항복하지 앓고, 7월7일 저녁에는 이른바 목숨을 던지는 최대의 육박전인 돌격을 벌였으나 미군에게 전멸되다시피 하여 7월8일 아침에는 전투가 끝났는데 미군의 희생도 컸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군이 북쪽으로 쫓겼을 때 이 섬에 살던 일본인 남녀노소가 함께 피난했었는데 이미 전세가 기울어진 것을 깨닫자 미군에게 패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하여 약 3백m나 되는 깎아지른 듯한 이 낭떠러지 위에서 모두들 손을 잡고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백제의 3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일화가 있지만 이 「사이판」섬의 자결의 절벽은 가까운 역사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현기증 나는 인간지옥>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은 이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슬아슬하게 보이며 현기증이 났다. 30여 년 전 나의 중학시절에 남녀노소, 더구나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끌어안고 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 이 곳을 인간지옥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때 민간인 1만3천명가운데서 실지로 떨어져 죽은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민간인들이 이같이 집단자결을 한 것은 전쟁 사에 극히 드문 일이 아닐까. 문득 병자호란 때 함락된 강화도에서 우리 나라 포로들이 자결한 옛일이 생각났다.
나는 눈을 감고 낭떠러지 위에서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울부짖는 어린이들을 달래며 끌어안고 떨어져 죽는 그 비장한 모습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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