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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강에 즈음하여 학생·학부모·교수에게|서울대총장 한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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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편집자 주=다음은 조기 겨울 방학으로 인하여 부족했던 수업시간을 보충하기 위하여 보충 수업을 실시하면서 한심석 서울대학교총장이 28일 발표한 담화문 전문이다.
친애하는 서울대학교 학생·교직원, 그리고 학부모 여러분! 본인은 서울대학교에 일찌기 없었던 엄동의 보충수업 및 기말시험을 맞이하여 소감의 일단을 표시함으로써 뒤늦은 신년의 인사로 대신하려 합니다.

<학부모의 협조 아쉬워>
우리 서울대학교가 작년 늦가을 이래로 정상수업이 마비되어 부득이 조기방학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대학은 물론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큰 불행으로 여기고 미달한 수업일수는 하루라도 빨리 채워져야 합을 절감하여 본인은 이례적인 속강으로 대학의 생명인 수업을 이어나가려는 것입니다.
기후의 불리한 조건에 더하여 유류파동으로 빚어진 일반사회의 긴장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결정이 결코 시선을 얻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원 정상화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며 또 그 전기는 대학인 자신들의 의지 속에 있음을 믿고 만난을 무릅쓸 각오로 이번 결정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 서울대학교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의 각계 각층의 유지 특히 학부모님들께서는 이런 우리의 긴급한 결정을 양찰하셔서 가일층의 협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학원을 지키겠다는 대학인의 자율적 의지의 구심점을 대학인의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학생제군의 애교심과 향학열에서 찾자는 것입니다. 학교는 지금 학생들에 의해서 유급 되어 너무도 오랫동안 수업조차 중단되어 왔읍니다. 학생들이 대학을 외면하고 수업을 중단함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본분을 벗어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학교로 돌아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되는 수업을 받아야 할 줄 압니다. 어서 한사람도 빠지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학교로 돌아와 모든 문제는 학교 내에서 논해 주기 바랍니다.
본인은 오늘의 우리 나라 학생들이 과거의 빛나는 학생운동의 건물을 계승하려는 충정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읍니다. 돌이켜 생각하여 볼 때 식민통치 시대부터 해방후의 혼란기를 거쳐 4·19에 이르는 학생 운동은 저항과 부정적 성격이 강하였으며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 보아 국민의 도덕적 공감을 얻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수업은 중단될 수 없어>
그러나 오늘날의 실정은 어떠합니까. 자치발전을 지향하는 현 싯점에서 학생들이 여전히 전통적 학생운동에 집착하고 있음을 볼 때 본인은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길이 없읍니다. 강력한 안보체제와 산업화를 통한 국력배양이 국가와 민족의 발전으로 연결되고 있는 오늘날 전통적 학생운동은 시대적 적합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깊이 인식해야 하겠읍니다. 본인은 학생들이 갖는 애국심·정의감이 이제 저항과 부정을 초극하여 참여와 긍정으로 승화되어야 할 전환기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은 학원 내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함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참다운 학원의 자유는 학생들의 긍정적 자세와 참여를 기조로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꾸준한 인내와 노력으로 단계적으로 구축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성급히 바람은 참다운 자유를 찾는 옳은 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 점을 깊이 살펴 오늘의 이 시점에서 자유학원을 이룩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재고해 주기 바랍니다.
이번의 속강은 그동안 마비되었던 질서를 되찾음에 있어 중대한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학원은 학생들에게 있어 평생토록 변치 않는 지성의 원천이며 고향입니다. 그 학원은 학생들이 너무나도 오랫동안 버려 왔기에 본연의 목적과 기능을 다하지 못했읍니다. 큰 기대를 걸고 막대한 투자를 해 온 국민과 사회가 이제는 더 이상 공부 안 하는 대학을 그대로 두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모두 등교하여 졸업예정자는 졸업을 서두르고 나머지 재학생은 진급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음 학년에 대비함으로써 무엇보다도 공부하는 대학의 인식을 새로이 해주어야 하겠읍니다.

<교수는 학생 선도해야>
본인은 또한 대학의 핵심을 차지하는 교직원, 특히 교수들의 가일층의 학생 선도를 당부합니다. 그동안 교수들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정권을 위해 진력하고 있음을 본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터입니다. 추운 날씨에 공부하겠다는 단 한 학생을 위해서도 교단을 지켜온 열의와 학업실력이 부실한 졸업생과 진급생을 만들지 않겠다는 연성, 그리고 학교와 학생에 대한 애국심 등은 길이 우리 서울대학교의 자랑으로 남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교수들은 우리 대학교가 현재 처해 있는 입장을 충분히 성찰하여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특히 학생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의 폭을 넓힘으로써 교수·학생간의 일체감을 더욱 굳혀주기 바랍니다. 교수는 대학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본인이 이번 기회에 교수들의 배전의 협력을 간청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대학의 시험 극복하자>
그러나 대학의 건전한 교육은 대학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기에 본인은 사회적 협력, 특히 학부모들과 이 나라 지성계의 협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학부모들께서는 학교가 처해있는 어려운 처지를 성찰하셔서 귀여운 자녀들이 배움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적극 협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성적 인사들은 대학이 이 어려운 시련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도록 많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 주시기를 바라마지않습니다.
송백은 엄동에 더욱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시행되는 이번의 속강이 우리 모두의 합심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을 믿고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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