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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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에서 또 다른 도청사건이 문제되고 있다. 이번에도 스쿠프의 공로는 워싱턴·포스트 지.
백악관의 기밀문서의 유출을 추적하기 위해 FBI가 4번이나 도청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 미국정부에서는 도청을 위해 매년 3백억 원이 넘는 돈을 써 가며 온갖 도청기를 개발하고 있다 한다.
가장 최신형의 도청기는 강력한 트랜지스터 형. 직경이 2㎝도 안 되는 만큼 어디에든 눈 깜짝할 사이에 장치할 수 있다.
이 도청기는 1.6㎞나 떨어진 곳까지 전화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달하는 성능을 갖고있다. 뿐 아니라 전화기 옆에서 하는 회화까지도 전해 주고, 다이얼 하는 상대의 전화번호까지 알려준다.
도청기는 본래는 국제첩보전의 도구로 발달되어 왔다. 실제로 오늘의 국제관계에서도 도청기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67년 5월에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일어난 중동 전은 불과 6일로 끝났다. 이때 이스라엘이 경이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이스라엘 쪽이 스파이전에서 이긴 덕분이라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의 첩보원들은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과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 사이의 통화내용 까지도 도청하여 녹음할 정도였다.
도청전이 가장 치열한 것은 역시 미·소 간이다. 지난 56년의 일이다. 베를린에서 소련군 사령부에 이웃한 아파트의 지하실에서 미국의 CIA는 거대한 도청장치로 소련의 군사기밀을 탐지해 왔다. 이것을 소련 쪽에서 알기까지는 여러 달이 지난 뒤였다.
그런가하면 모스크바의 미국대사관 안에도 소련의 국가보안국(KGB) 이 도청 마이크를 40개나 숨겨 두었던 것을 뒤늦게야 발견했다. 64년의 일이다.
해상에서도 미·소의 도청전은 치열하다. 지난 68년에 북한에 끌려간 푸에블로 호도 전자도청 장치를 싣고 있다 하여 화제를 모은바 있었다.
소련의 스파이 선도 미국의 케이프·케네디 근방, 카리브 해역에 자주 출몰하고 있다. 월남전 때에는 괌도 해상에서 늘 미 공군의 충격상황을 캐치하여 베트콩 쪽에 알려 주었다.
물론 도청을 막는 방청기의 개발도 눈부신바 있는 모양이다. 그 대표적인 게 코드25라는 새 발명품.
이것은 전화기의 송화기와 수화기 속에 끼어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통화자들끼리는 들리지만 도청자에게는 잡음만 들린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방청기로써도 도청기를 이겨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현대는 누구나가 죽어서 관의 뚜껑을 닫기 전에는 자기 목소리를 어디서 누군가가 도청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시대다』.
죽은 CIA장관 앨런·덜레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말 무서운 세계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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