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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마당쇠, 때론 바람막이 … 대한민국 공연예술 키운 그사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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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호 26면

저자: 이종덕 출판사: 도서출판 숲 가격: 1만8000원

이 책은 한 남자의 뜨거운 심장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을 공연예술 진흥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뛰어온 한 공무원의 뚝심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바로 이종덕(79) 충무아트홀 사장이다.

『공연의 탄생』

군사혁명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제 1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후 그는 문화공보부 예술과에서 뼈가 굵었다. 88서울예술단,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그리고 지금의 충무아트홀까지 대표를 역임하며 ‘직업이 사장’인 대한민국 제 1호 예술경영 CEO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터전을 닦아온 이가 김동호(77)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이라면 공연예술계의 바람막이이자 마당쇠는 이종덕이었다. 이 문화계 양대 산맥은 서로를 존경하는 절친이기도 하다.

그는 임진왜란 때 어전회의에서 이순신 장군을 혼자 변호했던 이조판서 이원익의 14세 손이다. 아버지로부터 청백리였던 조상의 얘기를 들으며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은 바로 ‘공정하게’와 ‘진실하게’ 였다. “리더십의 핵심은 조직 내의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진심과 관심을 건네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그와 인연을 맺고 그의 사람이 되어 일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한국 공연계를 이끄는 중견이 됐다. 부산 영화의전당 김승업 대표, 국립오페라단 김의준 단장, KBS 교향악단 박인건 사장, 국립극장 안호상 극장장, 강동아트센터 이창기 관장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동감 넘치는 예술경영사다.

이 책은 50여 년간 문화부 공무원으로, 예술단체 대표로 간직해온 자존심과 열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1973년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하고 귀국했을 때 카퍼레이드를 기획한 일, 67년 유럽 활동을 도왔던 10대 초반 어린이들이 88올림픽 때 ‘코리아나’가 되어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부른 사연, 연습 도중 무대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단원들과 합심해 공연을 성사시킨 이야기, 단신으로 농성장에 들어가 노조를 설득해 파업을 철회하게 한 일 등이 활동사진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아홉 살 외아들을 가슴에 묻은 사연도 소개된다.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있던 아이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직접 생명연장 장치를 떼기로 결심한 그는 병실을 나오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다산이 일찍 죽은 넷째 아들을 위해 지었다는 글귀는 그의 마음과 똑같았다.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 죽었으니,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집무실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언제 어디 있든지 열정을 지키라며 당시 삼성출판사 김종규씨가 선물한 구상 시인의 시구였다. ‘앉은 자리가/꽃자리니라/네가 시방/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

이 책 말미에는 저자 약력이 없다. 대신 예술기관 대표로 재직 당시의 작품 목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표가 그에겐 가장 소중한 약력이리라. 그보다 먼저 하늘로 떠난 아들 못지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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