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 속의 미성숙 연령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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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회의 응달 속에 버려진 미성년 연령층의 생활실태·노동실태는 곧 우리 사회의 미성숙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뜻한 가정의 보호, 제도와 된 사회의 보호, 또는 명문화된 법의 보호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 미성숙 연령층은 우리 사회의 깊은 심층에, 그리고 매우 넓은 저변에 깔린 채 일반의 관심에서 소외되어있다.
그들이 보장되지 못한 삶을 스스로 꾸려가기 위해 종사하고 있는 일들은 기능공·여차장·각종 「서비스」업종 사원·가정부라는 이름의 식모살이, 그리고 사환·구두닦이에 이르기까지 다종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육중한 기성사회의 상당한 부분이 이들 미성년들의 가냘픈 손으로 지탱되고 있다 해서 과언이 아니다. 끼니때마다 당연한 것처럼 받고 있는 밥상이며, 새벽마다 또한 당연한 것처럼 집어 보는 신문 한 장조차 실은 이들 미성년들의 눈에 띄지 않는 궂은 일의 노고에 기대지 않는 것이 없다. 심지어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비만한 어른들이 제 구두조차도 변변히 신지 않고 먹을 것을 먹지 못한 어린이의 손을 빌고 있다. 이러한 광경이 언제까지나 이대로 계속되어서 좋을 것인가.
동년배의 다른 아이들이 부모들 슬하에서 뛰어 놀고 학교에 다니는 한 모퉁이에서 이들 보호 없는 미성년 연령층이 일을 배우고 있는 그 일련의 실태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신참자들에게는 엄격한 도제 제도가 무언중에 강요되고 있고, 기능직종에서 이네들이 처음에 맡는 일이란 모두가 궂은 일이요, 어깨너머로 배워야되는 기술이 몸에 배기까지 그들이 겪어야 되는 수련의 신산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뿐더러 그들은 숙식비를 제하고 나면 한달 용돈 겨우 5백원 내지 천원을 벌기 위해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휴가도 얻지 못하고 연중무휴의 노동을 하고있다.
요컨대, 미성숙 연령층의 문제는 그들에게 복지시책을 베풀 수 있는 사회·경제적 힘이 성숙할 때까지 그냥 기다리고만 앉아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기본적인 것은 「사회의식」의 뇌성의 문제요, 우선 시급한 것은 미성숙 연령층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요, 그들을 부리고 있는 직장과 가정의 의무요, 그들의 봉사를 받고 있는 모든 시민의 의무임을 새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국가는 응당 그들에게 근로기준법에 정하고 있는 「이상」의 보호를 해야 마땅하지 그 「이하」의 처우를 받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그들의 노동에 부응하는 임금을 받아야되고 유급휴가를 누릴 수 있도록 감독과 보호를 해야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가에 있다.
그들을 부리고 있는 직장이나 가정은 그들에게 직장인으로서의, 그리고 그에 앞서서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의 자부를 갖도록 일상적인 배로가 있어야 되겠다.
더우기 내일의 한국 사회를 짊어지게 될 이들 미성년자에게 그들이 주인이 될 내일에의 희망을 북돋기 위해서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장학기금 같은 것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미성년 연령층이 어떻게 자라고 있느냐 하는 것은 모든 성인층으로 하여금 귀여운 내 자식이 그 안에서 같이 살게 될 내일의 사회 환경의 성격을 좌우하는 것임을 반성케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남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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