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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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달에 발표된 우수한 단편소설 가운데 몇몇은 정상을 벗어난 가정 내지는 소규모 사회를「파시즘」이나「나치즘」같은 정치체제의 축소판으로 묘사하고있어 흥미를 준다. 인간의 본성이「막시즘」위의 정치체제를 용인하지 않으며 자연의「리듬」이나 역사의 흐름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때문에 그러한 정치체제의 결말이 뻔한 것처럼 이러한 소설들의 한계도 명백한 것이지만이 소설들이 역사의 그러한 순환원리를 재확인해 주는 것 같아 재미있다.
먼저 김주영의『무등타기』(한국문학). 박지발과 그의 아내가 주요인물이 되고 있는데 이 박가가「파시스타」적 인물인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는 언제나 물리적이다. 대화는 없고 일방적인 행동만이 있다. 가끔 아내를 개처럼 두들겨 패려는 것도「팍시스타」의 전형적 행동인 것이다. 처는 시녀다. 그래서 시녀에겐 『박지발의 존재는 바로 인명재천』이었다. 박가는 미군이 마을에 주둔해 오리라는 소문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고 대뜸 한몫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찬스」라고 해석한다.
그는 무슨 추진위원회란걸 만든다. 이같은 그의 행동은 이를테면 자기환상(욕심)을 이룩하려는 기만술이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미군대신에 교회가 들어선다. 환상이 무너진 셈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자연이나 역사의 보복을 받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이 작품의 금욕정적 문제는 가히 천하의 일품이라 할 수 있다.
최학의『잠시 머무는 땅』(현대문학)도 여간 통쾌하지 않다. 『차가운 가을 소나기』는 「파시스타」가 조성하는 공포분위기의 비유. 그들은 몽둥이로 학생들을 다스린다. 민방공 훈련, 애국조회, 무슨 웅변대회, 무슨 색출작전을 즐겨 공연한다. 정녕 인간을 억압하는 것이 장기인 모양이다. 그럴때면 학생들은 미꾸라지를 잡는 것이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레지스탕스」였다. 「파시스타」는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해동명장전』따위를 강매한다. 인간은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시스타」에겐 <백선생>이란 똥개가 있어 마침내 제물이 되고만다. 그것은 밀물처럼 다가오는 자연의「리듬」에 의해서였다. 역사의 순환원리가 기본적「패턴」이 되어있는 가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조선작의 『미술대회』(한국문학)도 거의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알다시피 빙공영리는「파시즘」의 말기현상의 하나가 된다. 이 단편엔 교장을 선두로 하는 일단의 교사들이 등장하여 미술대회라는 미명아래 국민학교생들의 코 묻은 돈을 수탈하고 있었는데 책임은 교장자신이 지겠단다. 이러한 배짱은 어디서 비롯됐는가. 소위 안정된 체제가 이 무도덕자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해일(신춘「중앙문예」71년 당선)의『어느 하느님의 어린시절』(세대)은 한 유년이 비인간적인 환경속에서 어떻게 자아를 형성해 왔는가를 성실하게 서술한 작품으로, 대단원에 이르러 한 소녀와의 대화에서 비로소 수치감을 느꼈다고 하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부끄러움을 느꼈는가. <자기 자신과 사귀는 사람> (어린시절)은 일종의 자위행위에 만족하고 있는 소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녀의 말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객체와의 교섭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년은 비로소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서 다른 학생들과 어깨동무를 한채 학생봉기(4·19)에 참가하는 것이다.
강용준의『용성리기행』(월간중앙)도 같은「패턴」위에서 였다. 20년만에 제2의 고향엘 찾아간다.
그런데 고향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너무도 완전무결하게 옛날 그대로』다. 아내는 병으로 누워있다. 인간은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들이 죽어가는 것은 당연히 외면되어야 하며 무시되어야 할 것인가. 이 작품은 그것을 인정하는「파시즘」의 환상과 인간적인 면모를 재확인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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