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물가|9개 품목「12·4인상조처」…그 파장|산업에 미치는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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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가격안정을 위한 물가인상조치라 했다. 석유류 등 9개 품목의 가격현실화는 그 파장이 산업생산·물가에 넓고도 깊게 침투할 것이며 따라서 생활에 파고드는 심도는 그만큼 엄청날 것이다. 8·3조치이후에 행정력으로 억압됐던「동결의 독」이 무너졌기 때문에 억제됐던 탄력이 한꺼번에 작용할 것 같다. <경제부>

<가격보다 물량확보가 문제>
일찍이 없었던 광범위한 가격인상은 농·축산업 등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에까지 그 주름살을 미쳐 갈 것이 확실하다.
우선 석유류·전력 등 기초「에너지」값의 인상은전산업에 걸쳐 원가고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며, 기타 원자재를 비롯한 2차 중간제품의 가격상승이 이에 가세하여 생산활동을 기저부터 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가격문제보다는 물량확보가 당면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미 국제원자재 파동을 겪고 있는 때에 가격인상까지 닥쳐와 결국 생산활동은 협살을 당해야 할 형편에 처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가격인상이 실현된 품목을 생산하는 업종은 그동안 국제가격앙등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출고가격이 억제되었던 상태에서 숨쉴 구멍을 찾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물가정책의 파행성 때문에 이중가격을 형성, 사실상 가격이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의 가격현실화가 비정상적인 가격을「커버」하고도 남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품목 따라 현실화 못된 것도>
오히려 품목에 따라서는 아직도 완전한 현실화를 기하지 못했다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앞으로 생산활동의 위축을 초래함이 없이 엄청나게 밀어닥칠 원가고 압력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있다.
석유류 가격의 30%인상에 따른 업종별 원가상승요인을 시산해 보면 ▲전력=12.66% ▲운송업·보관업=8.16% ▲화학비료=7.89% ▲수산물=5.34%등 모든 산업부문에 골고루 퍼지고 있다.
여기에 석유화학제품 원료인「나프타」가의 대폭적인 인상은 심각한 사태를 야기할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인상에 못 낀 공산품과 국민경제에 불가결한 60개 품목에 대해 가격인상사전 승인제를 적용함으로써 원가상승 요인을 묵과하려는 방침으로 있다.
이러한 물가정책방향설정은 또다시 가격·유통구조의 이중구조를 결과하게 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같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원자재 난과 고가격 파동은 외부조건에 의한 불가피한 사정이며 산업계가 수출「붐」으로 호황을 맞았으면서도 내수부문의 압박으로 그동안 비정상적인「루트」를 찾아야만 했던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예컨대 배합사료는 그동안 품귀와 함께 제조원가상승을 이유로 정부고시가격보다 약50%이상 오른 값에 거래되어 왔다. 축산업자는 비싼 사료로 가축을 사육하는 반면 육류 값은 묶여 있는 까닭에 사육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져 왔다.
이는 곧 축산활동의 위축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의「슬로·다운」이 시작되어 내년경기전망의 어두운 면을 고려하면 GNP(국민총생산)의 무역의존도가 60%선이 되는 한국경제의 짐은 가중된다는 것을 예측하게 한다.

<무역의존도 높아 더 큰 문제>
여기에 가격상승으로 국제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내년의 생산활동이 계속활기를 띠리라고 점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지난 8월8일 석유류 값을 13% 인상했을 때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으므로 생산자체의 경영합리화로 가격상승요인을 소화토록 요구했었다.
그러므로 ①그동안 누적되어 온 원가고 압력이 단번에 현재화한다는 것과 ②소비재 산업구조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정부의 총 수요 규제책이 즉각 산업에 파급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생산활동의 둔화가 오리라는 예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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